쿨한 여자 - 최민석 연애소설
최민석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잃어버린 사랑을 향해 다시 손내밀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가.

한때 나는 그에게 손내밀고 싶었었다. 온통 그의 기억으로 가득찬 그때. 헤어지고 나서도 그가 꼭 곁에 있는 것만 애달픈 심정이 되면 차라리 전화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같이 걸었던 길, 함께 했던 시간들이 생각났던, 내가 누군가의 헤어진 어느 날들의 풍경이었다.

 

 

작가 최민석은, 지 한때 이별했던 이를 다시 만날수도 있을까, 우연히 길에서 만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하는 기분을 연상케 하는 글을 썼다. 최민석 연애소설이라 지칭한 『쿨한 여자』다. 여자가 얼마나 쿨하면 쿨한 여자일까. 쿨한 여자는 과연 끝까지 쿨할 수 있을까.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순전히 외로웠기 때문이다. 라고 시작하는 첫 문장.

몇 년을 만나고 헤어진 연인들이 있다. 아니 나 ' 경도진'이 있다. 나는 그녀와 헤어진 후 글을 쓰겠다는 이유를 대고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었다. 그래서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곤 밖에서 노는 아이들을 구경하거나, 구름을 바라보거나, 글을 약간 쓰거나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 한 가지 빠졌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길 즐겼다. 혼자 한강변을 뛰고 샤워를 한후 베란다로 나간 후에 찬 바람이 불때면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헤어지고 난후, 한 13,873,456번 정도 보았다고 했다. 헤어진 지 3년, 남아공 월드컵을 가자는 터무니 없는 약속을 지키고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보고 싶어 만나게 되었는데 늘 만나왔던 것처럼 느껴졌다. 같이 술을 마시고, 하룻밤을 예전처럼 보내고 헤어졌다. "나 쿨한 여자야"

 

 

처음의 1부는 원래 단편소설이었다.

이 단편 소설을 버릴 수 없어 작가는 하나의 이야기지만 또 다른 이야기인듯, 연작 소설처럼 2부와 3부, 4부를 이어 써 한 편의 중장편 소설로 펴냈다. 1부에서 헤어졌던 그녀를 다시 만나고 헤어진 후 2부와 3부, 4부에서는 잊고 있었던, 아니 가끔씩은 궁금해하고 있었던 그녀를 우연히 만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제주도로 가는 모임에서 여자 시인과 함께 타고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그는 그녀를 생각한다.

 

 

사랑이란 감정은 그런것 같다.

아무리 헤어졌어도 생각나기 마련이고, 우연히라도 만나게 되면 왠지 불편함마저 느껴지게 되는 것. 내가 만나는 사람이 없고, 상대방에게도 만나는 사람이 없을때 그들은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이고, 서로에게 상대방이 있다면 아예 못본척 그냥 지나칠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당황해하며. 서로에게 가는 시선을 애써 붙들어 맬 것이다.

 

 

 

 

헤어진 사람들은 맥주를 마신다.

그것도 기네스를 마신다. 한때 정우성이 이 맥주를 광고할때, 포털사이트만 열면 나타나서는 나에게 눈을 맞추며 맥주를 권하는 모습에 설레어 마셔 본 맥주를 책 속의 남자가 마시고 있었다. 부드럽게 감기는 흑맥주의 맛인 기네스를 마시는 남자 도진때문에 나는 또 기네스 맥주를 사러 갈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때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은 그녀와의 재회가 아니라, 그래서 그녀와의 또 다시 펼쳐질 미래가 아니라, 그리움 자체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나는 그리움의 감정 자체를 불러일으켜 세워 내가 가장 나다웠던 시절과 재회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만나고 싶었던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와 함께 있는 나 자신이었던 걸까. (178~179페이지)

 

보통의 헤어진 사람들을 보면 상당히 구차하거나 질질 짜거나 하는데, 작가 최민석은 구차한 소설을 쓰지 않았다. 상당히 깔끔하다. 헤어진 연인들이 이렇게 쿨하면, 누군가 사랑때문에 복수하는 일도, 눈물짓는 일도 많이 없을 것만 같다. 최대한 쿨하게, 최대한 깔끔하게 써낸 글이다. 작가의 글에서 도진이 아주 잠시 만났던 여자 시인을 가리켜 '잠재적 이별 대상', 이하 '잠별'은 , '점진적 이별' 이하 '점별', 을 거쳐 '실재적 이별' '실별'을 거쳤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단어들이다. '나는 쿨한 여자'라고 했지만 절대 쿨할 수 없는 여자와 쿨하고 싶지 않았지만 쿨한체 하고 있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사랑 거 참 오묘하단 말이지.

달거나, 아프거나, 쓰거나 하다. 눈물이 흐르니까 짠맛도 있으려나. 우리의 오감을 다 끌어내는 거 사랑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