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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서울
방현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평점 :
서울은 내게는 늘 그리움이었다.
이십 대 시절,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던 단짝 때문에 나는 휴가때나 주말에 자주 그아이의 집을 향해 기차를 타곤 했었다. 그 아이가 보고 싶어, 출발할때부터 보고 싶음에 가슴 설레어하고, 어서 서울에 도착하기를 바라며 창밖의 느린 풍경들을 바라보곤 했었다. 차창 밖은 빠르게 지나가는 듯 하지만 느린 풍경으로 있었고 나는 애써 마음이 먼저 달려감을 붙잡아야 했다. 그리고 서울역에 도착하면, 그리운 친구가 마중을 나와 우리 둘이는 손을 맞잡고 그 아이의 집을 향해 또다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을 탈때마다 몇호선인지, 어디서 갈아타야하는지를 보며, 먼 거리였지만 그 아이와 함께 탄 서울의 지하철은 곧장 도착한 것처럼 시간이 빨리 흘렀다.
서울은 내게 영화의 도시이기도 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도 새로 영화가 개봉하면 거의 다 챙겨 볼 정도로 영화 관람을 했지만, 서울보다는 시간이 더 지나야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서울을 가면 우리는 항상 시내로 나가 영화를 보았다. 나한테는 거대하게 보였던 대한극장에 먼저 도착해서는 영화부터 예매하고 시내를 배회하기도 했었다. 그 친구가 살고 있던 서울에 살고 싶기도 했다.
「로스트 인 서울」의 그렉안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의 서울로 공부하러 왔다.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지만, 케이블 방송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다가 방송업체 사장인 강을 만나 그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안방을 연결하는 안쪽에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한 공간을 '나'에게 의뢰해 만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그렉안나와 강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원대한 꿈을 꾸고 서울에 왔지만 룰렛구슬은 그렉안나를, 강을, '나'를 점점 나락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 비밀의 방 때문에 그 집을 임대해 온 한 남자의 이야기는 서울의 모습을 우울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어딘가를 갔을때, 그곳의 풍경이 낯설지 않음을 느낄때가 있다. 꼭 예전에 와보았었던 곳 같고, 익숙함을 느낀다면, 우리는 과거에 이 곳에 와 본적이 있었나 하고 느끼는 때가 있다.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내 모습이 겹쳐보일때 우리는 순간 당황을 하곤 한다.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담았다. 중국의 가흥에 여행간 부부, 그곳의 낯설지 않음을 느낀 '나'는 그곳에 오래전에 형과 머물렀던 공간이었다고 느낀다. 마치 형과 함께 있는 듯, 이곳에 머물렀던 이야기를 아내에게 하자, 아내는 십육 년전 부터 같이 살지 않았느냐며, 그것을 강하게 부정한다. 내가 있되, 또다른 자신이 있는 듯한 느낌. 우리는 그것을 또 다른 나, 도플 갱어라고 한다.
자신의 몸 속에 있는 내장을 모두 도망시키고도 감옥을 빠져나가지 못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탈옥」과 어렸을때부터 가족을 때렸던 아버지를 아버지라 여기지 않고 그 남자라 부르며, 그 남자를 미행하며 정체를 파악하고자 하는 「그 남자의 손목시계」도 있다. 또한 위급한 상황에서 이별에 관한 섬세한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후쿠오카 스토리」에서는 외로운 타국 후쿠오카에서 유학을 하며 사귀었던 네 명의 연인들이 다시 후쿠오카로 향하는 요트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담았다. 로라 버넷과 로라 브랜든으로 살았던 미조에 대한 이야기를 쓴 「로라, 네 이름은 미조」외국인과 살면서 외국인의 문화에 애써 적응하고자 했지만, 겉돌기만 했던 로라의 아픈 이야기를 담았다. 기이한 죽음에 관한 세 가지, 혹은 한 가지 사례라는 부제의 「퍼펙트 블루」는 슈퍼스타 M과 K, M2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담은 이야기가 마지막이다.
우리는 서울에서 모두들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느 것에도 정착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나의 도플갱어가 나를 다른 사람으로 이끌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자 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해답은 없었다. 그저 걷기만 할뿐.
이런 사람들이 있음에도, 나는 이제 또다른 이유로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책 나눔하며 책에 대한 토론하는 모습이 참 부럽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시 하기 때문인지 이럴 때 난 서울에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런 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작가 방현희는 『로스트 인 서울』이라는 단편집에서 서울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비춰주고 있었다. 건강하고 밝은 모습보다는, 문학평론가가 말했듯, '병든 서울'의 모습을 말했다. 물론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거란 생각은 한다. 누군가와 정을 나누고 베푸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누군가를 해하거나 핍박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