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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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17페이지)

 

 

나에게 롤리타는 아자르 나피시의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와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비틀었다고 하는 마리샤 페슬의 『블루의 불행학 특강』이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읽기 전이어서 롤리타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알고 보니 어린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롤리타 컴플렉스'라고 한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때 이 책을 읽어보자고 마음 먹었었지만 이번에야 읽게 되었다.

 

 

언젠가 기분 나쁜 뉴스를 접한 적 있었다.

소아성애자인 백인 남성들이 동남 아시아의 적게는 9살에서부터 14살 까지의 아이들을 찾는다는 기사였다. 아시아 소녀들의 부모들은 돈 때문에 아이들을 내주고 있었다는 걸 보며 그러 사람들이 다 있나 싶어 눈살을 찌푸렸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첫 장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글을 보며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의 첫사랑인 애너벨 리(에드거 앨런 포의 시와 비슷한)의 현신처럼 보이는 롤리타를 보며 걷잡을 수 없는 마음에 빠져버린 한 남자 험버트 험버트의 수기 형식으로 된 글이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의 이름은 돌로레스. 험버트에게는 언제나 롤리타, 롤리타. 롤리타를 처음 만나게 된 이야기에서부터 롤리타의 집에서 방 하나를 썼던 세입자였다가, 롤리타의 의붓아버지였다가, 롤리타의 엄마가 죽은 뒤에는 몇 년간 롤리타의 연인이었던 험버트 험버트, 일명 H.H.의 롤리타를 향한 마음들을 적어놓은 글이었다.

 

 

아홉 살에서부터 열네 살까지의 소녀를 님펫이라 부르는 그가 서른일곱 살이던 해 열두 살의 롤리타가 나타났을때 그는 한 눈에 매혹되고 그녀에 대한 욕망으로 걷잡을 수 없는 마음에 빠져든다. 그녀의 의붓 아빠로 미국 전역을 누비며 그녀와 함께하고 어느 날 사라져버린 롤리타를 찾아 헤매게 된다.

 

 

 

 

롤리타를 향한 험버트 험버트의 포르노그래피인 것 처럼 느껴졌던 책의 내용에 어느 순간 빠져 읽게 되었다. 롤리타를 향한 그의 번민과 애틋함이 그대로 묻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나의 혼란스러움도 무시하고 롤리타를 향한 그의 마음들에 푹 빠져 버렸다.

 

 

나보코프는 『롤리타』는 가르침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라고 했다. 그에게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을, 다시 말해서 예술(호기심, 감수성, 인정미, 황홀감 등)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에만 존재 의미가 있다 라고 했다. 책을 읽게 되면 작가가 어떤 의도로 글을 썼는지 사실 궁금하다. 책을 읽으며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에 귀기울이며 작가의 의도를 알고자 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딸을 가진 어머니라면 너무도 싫어할 이런 소설을 썼는가. 더군다나 사춘기 이전의 소녀인 그가 부르는 님펫에 빠져 있는 이 남자 험버트 험버트의 이야기를 말이다.

   

 

사실 내가 미성년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어리고 순결하고 요정 같은 금단의 소녀가 지닌 투명한 아름다움 때문이라기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초라한 현실과 나에게 약속된 위대한 이상 - 즉 위대하지만 영원히 실현할 수 없는 장밋빛과 잿빛의 미래 - 사이의 격차를 이렇게 무한한 완벽성으로 메워가는 상황이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리라.  (423~424페이지)

 

 

몇 년 전에 박범신 작가의 『은교』라는 작품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나이 칠십이 된 노시인이 자신의 집에 온 열일곱 살의 은교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져 버려 자신의 온 마음을 다 차지해버린 젊음에 대한 갈망을 나타내는 글이었다. 그때 나는 노시인도 사람이구나. 젊은 날의 그 순수함을 그때까지도 간직할 수 있구나. 머물러 있고 싶은 청춘을 그 아이 은교에서 보았구나 라고 느꼈었다. 이 작품 또한 서른일곱 살의 남자가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지도 않은 열두 살의 소녀에게 빠져버린 이야기였다. 처음엔 어색하고 뭐라 말할수 없는 불편함이 자리했지만 어느 순간 푹 빠져 읽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열두 살 시절에 좋아했던 애너벨을 롤리타를 보며 추억하고 있었다. 그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간 것이다.

 

 

처음 시작 부분의 롤리타를 부르는 음성, 마지막 장의 간절함으로 부르는 '나의 롤리타' .

나보코프가 내비친 문장 속의 언어유희를 보며 문장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롤리타를 읽다. 나보코프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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