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이 나를 새길 때
김지운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재경 씨가, 형이 호수 같은 사람이라고 그랬거든요."

 

"호수라고 해서 늘 잔잔한 것만은 아니다."

 

"호수는 주변의 모든 풍경들을 물그림자로 고요히 품고 있잖아요."

 

"깊을 뿐만 아니라, 전부를 다 품어 안고 있는 사람."

 

 

호수 같은 사람 하무진이 이슬 내린 연보랏빛 제비꽃 같은 그녀 민연하를 마음에 품어버렸다. 하재경의 피앙세인 그녀를. 사랑이 이렇게 소리도 없이 와 버려도 되는 것인가. 가만가만 속삭이듯이, 어느 틈엔가, 그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버렸다. 챙겨주고 싶은 그녀를, 조금씩 챙겨주다보니 그녀와 단 몇 시간을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행복했다. 아침, 저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것도 모자라 그의 시선이 비치는 곳에 그녀를 놓아두고 싶었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이 조금씩 그녀에게 가고 있을때, 그런 그의 마음이 혼자만의 감정이 아니란 것을 어느 순간에 느껴 버렸다. 느낌이란 게 통렬하게 주관적이라는 자신이 했던 말처럼, 그가, 그녀가, 사랑이란 감정을 통렬하게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의 감정들을 도저히 입 밖에 내보내지 못했지만, 그는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눈빛을 건넸다. 그의 눈빛들이 저절로 그녀의 마음으로 스며들어와 아프면서도 좋았다. 그저 바라보는 게 좋았다. 그 함께하는 잠시의 시간들이 좋았다.

 

 

온 밤을 뒤척이게 하는 이유는 민연하 너. 내 불면의 근원은 단 한 사람.

 

이슬 내린 연보랏빛 제비꽃.

 

 

 

 

연홍주를 향한 차경욱이 나를 먹먹하게 하고 애틋하게 했을때, 나는 차경욱 같은 사람이 정말 좋았다. 그런데 이젠 이 책을 읽고 나니, 민연하를 마음에 품어버렸던 하무진 씨가 정말이지 좋아져 버렸다. 이 세상에 이런 사람이 정말 있을까. 이토록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는 남자가 다 있을까. 사랑한다면 자신이 가진 지위를 위해서라도 민연하를 어떻게든 제 사람으로 만들텐데도 이 남자, 하무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연하의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아주 짧은 입맞춤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연하를 바라보고 있는 하무진이었다. 연하가 색색의 옷감으로 지어준 잠옷을 감히 입지도 못하고 머리맡에 올려두곤 잠을 청했다. 연하 생각에 나쁜 꿈을 꾸어 잠들기가 힘들면 아예 잠을 자지 않았고, 또한 꿈속에서라도 그 나쁜 꿈을 즐기려고까지 했다.

 

 

연하의 시선을 따라 먼 어느 곳을 바라보며 무진은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 안타까움이 혼자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어쩌면, 자신보다는 연하가 더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   (134페이지)

 

 

이렇게 민연하를 마음에 품어 버린 무진 씨가 참 멋졌다.

사업을 하는 남자인데도 도무지 경영인 같지가 않았다. 영화 제작을 하고 있어서인가. 그래서 로맨티스트인가. 자신의 눈빛이 드러난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한 여자 만을 향한 눈빛이 참 애절했다. 이런 무진에게 달려드는 여자가 없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하무진과 민연하의 사랑이 아프면서도 기쁨인 이유, 아마 이들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로를 향한 순수한 마음. 마음이 다 들여다 보이게 하는 거짓말들이 아팠다. 아니, 그런 표현들이 참 이뻤다. 슬퍼도 일부러 밝음을 내보이는 그들의 다정한 말투, 마치 가까운 사람들처럼 짧게 말하는 그 말투들이 참말 이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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