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정진홍의 900킬로미터
정진홍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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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을 보고 있노라면 갖가지 생각이 다 든다.

처음 달력을 받았던 그때를 뒤돌아 본다. 스무살 꽃처녀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달력을 받고, 올해엔 어땠으면 좋겠다는 간단한 계획을 세우며 탁상달력을 이것저것 메모를 한다. 그리곤 한 달, 두 달 이렇게 무심히 지나다 보니 달력을 한 장 남겨놓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제대로된 계획을 세우지 않는것 같다. 그저 별일없이 한 해가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니 올해도 다 갔구나. 올해에 내가 무얼했을까. 별일없기를 바랬던 한해 였지만 이런저런 일도 있었고, 가족중에서 암수술을 받은 분도 계셨다. 별탈없이가 이렇게 힘들구나 생각하면서 또 한 해가 가는게 그저 안타깝다. 내 개인적으로는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져보자고 생각했지만 정작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나 싶다. 아니면 책만 파고 있거나. 나이듦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하고 있는 즈음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많이 아팠던, 삼십 년 전의 사춘기 시절, 성장통을 알았던 그때에 느꼈던 불안과 두려움을 최근에 새삼 느끼고 있는데 저자는 그것을 사추기의 '정지통'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도 맞는 말인지.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나의 삶은 얼마나 남아있는 것일까 고민하고 아파하고 얼마가 남을지도 모르는 삶에 대해 아픔을 겪고 있는 우리는 모두 '정지통'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내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나만 힘든게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음은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하는 최고의 선생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삶에는 죽음이 생략돼 있다. 아니 죽음을 모른다. 그래서 삶에 대한 절실함도 희박하고 삶의 밀도 역시 떨어진다. 삶이 절절하고 차지려면 죽음에 직면해야 한다. 죽음을 배워야 한다.  (61페이지)

 

 

 

 

 

산티아고 900킬로미터를 홀로 걷는 일은 고행의 연속이다.

배낭가득 물건을 담아 홀로 길을 걷는 길, 누군가와 함께라면 덜 힘들수도 있지만, 오로지 홀로 걷는 길이기에 오롯이 자신과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멈추어 있는 곳에서 산티아고를 걷는 이들과 잠깐의 담소를 하고, 내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아름다운 모습들을 발견하는 일들이 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겠는가. 진정한 자신과 조우하고 싶다면 혼자서 여행하라고 권하고 싶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길이라면 덜 외롭고, 대화를 할뿐 사유에 젖어들지 못하는데 반해 혼자하는 여행은 진정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길이며, 사유의 꽃을 피운다. 이것은 혼자 여행 해본 사람들이 알 일이다.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누구와 경쟁하며 가는 길이 아니다. 여럿이 함께 가든 혼자 가든 결국에는 자아를 찾아가는 고독한 길이다.  (291페이지)

 

 

저자는 책에서 느림의 미학을 나타냈다.

성질급한 나는 900킬로미터가 실제로 어느 만큼인지 감도 잡히지 않지만 47일간의 여정이었으니 어마어마하게 길다라고만 생각이 든다. 그 힘든 시간들 속에서 빨리 걷지 않는 것에 대해 말했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자신을 만나고자 하는 길에 빠르게 걷는 일은 어쩌면 조금 우스운 일이기도 하다. 되도록이면 느리게 걸으며 자신과 만나며 지나온 삶,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우리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 같다. 우리 마음속에 깊이 숨겨진 나의 자아를 찾아가는 일이기도 하기에 산티아고를 걷는 것 같다. 그것도 느리게, 아주 천천히. 마치 그 순간, 우리의 삶이 멈춰져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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