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바람이 되어
송은일 지음 / 예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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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갔을때, 어떤 장면이나 풍경을 보았을때 예전에 있었던 일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본것 같은 느낌을 받을때가 많다. 그걸 '기시감'이나 '데자뷰'라고 하는데 그럴때 우스개소리로 전생에 만나거나 겪은 일이라며 웃곤 했었다. 이 책은 '환생' 즉 회귀를 겪는 이들을 다룬 책이다. 내가 전생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때로는 궁금하기도 했지만, 과거의 생을 기억하고 있는 삶을 산다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일거라 생각이 든다. 과거의 삶이 자꾸 생각나고 과거속의 사람을 다시 만난다면 너무나 고통스럽지 않을까. 우리에게 인중이 있는 이유, 어느 책에선가 읽은 건데 과거를 기억하지 말라고 태어나기 직전에 손가락으로 누른 자리랬는데. 이 책에서처럼 모든 것을 기억해버리면 현재의 삶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과거속의 삶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것이다.

 

 

 

여기 과거의 한 시대, 친구였던 세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고 현재의 삶에서 과거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는 1920년대의 김명순, 나혜석, 김원주. 거의가 문맹이던 시절 독립운동을 하고, 죽을 처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던 여성들이 동시대에 현생에 환생한 이야기를 그려냈다.

 

 

 

과거 김부전이었던 유아리는 작가이다.

전생의 상처들을 소설로 쓰며 현생을 살아가고 있다.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석해인 역시 과거 김한주이며, 현재 형사인 손재엽은 과거엔 나유석이란 여자였다. 그리고 자신의 환생을 조형예술을 빚으며 살아가는 로즈 이가 밀러가 있다. 이 책에서는 이들 네사람이 주인공이며 과거에 서로 엮여진 사이였다. 동시대의 사람이었던 이들이 다시 현생에서 만난다는 게 쉽지 않을것 같은데 실제로 이런 일들이 많다고 한다. 실제로 지구 전체 인구의 100분의 1이 환생하고, 회귀를 겪는 인간중 대부분이 자신의 회귀를 의식하지 못하고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는데 반해 그중 10퍼센트는 자신의 회귀가 전생의 기억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명확히 인식한다니 상당히 놀랍다.

 

 

 

책에서는 아무래도 이들 네사람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들 주위에는 환인들이 많다.

우리 주변 사람들의 대부분이 환인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책에서는 회귀살인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과거의 삶에서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현생에서 철저한 계획하에 죽이거나 해를 끼치는 걸 말한다. 과거에 아프게 했던 사람에게 미운 감정이 드는 건 당연할테지만 현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그것에 적응을 해야 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울 것 같다. 과거에 모녀관계라던가, 친구관계인 경우 그 친밀감이 생기는 건 어쩔수 없을 것 같고 애틋한 마음때문에 가깝게 지내기도 하는 것 같다.

 

 

 

-환還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거야. 이생에서, 환생의 악순환에 매듭을 짓자는 것. 그렇게 해서 다시 환인으로 태어나지 말자는 것. (45페이지 중에서)

 

 

 

회귀 과정을 겪었든, 이겨내었든 간에 고통스러운 건 어쩔수 없을것 같다.

작가인 유아리가 『간지러움』이란 책 첫머리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죽어서는 안 되겠기에' 라는 브레히트의 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란 시를 적어놓듯, 로즈 밀러가 전시회 제목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를 쓴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란게, 좋아하는 게 어쩔수 없는 것인가 싶다.

 

 

 

회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이들 주인공들인 아리나 재엽, 해인, 로즈가 참 안타까웠다.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생보다는 다음생에 어떻게 태어날지 그런 걸 생각해본다. 친구들과 우스개소리로 '넌 다음 생엔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하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떤 이는 동물로, 어떤이는 식물로 태어나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고, 나는 세상을 구경하며 여행하는 자유로운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했었다. 여자로 살면서 마음껏 해보지 못한게 한이 되었던지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과거의 생이 있고, 다음 생이 있다지만 솔직히 그걸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이란 생각을 어쩔수 없이 해보기는 한다.

 

 

 

내가 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난다면, 나는 현생에서는 아리처럼 책을 열심히 읽고, 다음생에서는 세계를 여행하는 자유로운 남자가 되어 여행 에세이집을 낼수도 있겠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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