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전형필 -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의 삶과 우리 문화재 수집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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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과 단원의 그림을 여러군데서 접하고 책속에서 소장처가 간송미술관이라는 것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지방에서 살기에 서울에서 하는 전시회는 가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문에서 우연히 간송미술관 전시회를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너무 가고 싶어 애타하던 중에 갑자기 서울 가게 될 일이 생겼다. 갑자기 휴가를 내고 간 서울행에서 인사동을 걷다가 간송 미술관 전시회 생각이 났다. 일년 중 봄, 가을에 딱 두 번 하는 전시회. 이런 기회가 다시는 없겠다고 생각하고 수소문해 간송 미술관으로 향했다. 평일 오후인데도 길게 늘어서 있는 줄. 줄어들지 않는 그 길다란 줄에서 간송 미술관의 그림들과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각들이 보여 그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았다. 길게 늘어서 있는 사람들의 긴 줄에서 곧 간송 미술관의 전시회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설렘이 앞섰다. 세 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가서 본 전시회는 내가 기다렸던 그 모든 순간이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혜원의 '미인도'와 단원의 그림들. 실제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감동이었고 환희였다.

 

 

 

작년 가을에 전시회를 다녀온 후 간송 전형필에 대한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를 읽으면서 간송이 최순우의 두번째 스승이었다는 글을 보고 책장 한켠에 놓여있던 책을 불현듯 꺼내게 되었다. 책의 첫 장에서 언급된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을 기와집 스무채 값에 구입하던 그 과감한 결정에 숙연해짐을 느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그 많은 재산을 써가며 우리 문화 예술품을 지키기가 쉽지 않을텐데도 그는 그 자리에서 결정을 했다. 자신의 취향보다는 그것이 이 땅에 꼭 남아야 할지 아니면 포기해도 좋은지 먼저 생각했다. 일제 강점기에 탄압받던 시절에 어떤 이는 일제에 협조하는 이가 있었고, 어떤 이는 우리 민족을 구하는 일에 매달리기도 했지만 우리 문화재를 지키려 했던 간송 전형필이 있었기에 우리는 우리 문화재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학자들은 우리 문화에 대한 연구를 할수 있었다 한다. 그만큼 그는 우리의 서화와 청자, 불상 등 문화유산을 사비로 구하면서 우리 민족을 지켰던 이였다.

 

 

그 당시에 외국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최초의 개인 박물관을 지어 우리 문화유산을 진열하고자 했다. 몰락해 가는 양반들, 일제 강점기에 살기 힘들었던 양반들은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우리 고유의 서책을 돈 몇 푼에 팔아넘겼다. 그런 귀중한 서책들과 서화들을 일본인들이 마구 구입해 가는게 안타까워 그는 큰 돈을 들여 '한남서림'을 인수해 서책들을 지키고자 했다. 그런 그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는 미술관에 가서 우리의 얼과 역사가 배어있는 문화 유산을 바라보며 우리나라 고유 문화에 대한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간송미술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속에서도 우리 문화 유산을 지켰던 간송이 참 위대하게 보였다.

올 봄의 '진경시대 회화대전' 전시회는 못가본게 많이 아쉬워 가을에 하는 전시회는 꼭 다시 가보고 싶다는 다짐을 하였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얼른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벌써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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