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을 할때는 그 사랑이 영원할 것 같지만 언젠가는 이별이 다가오기도 하더라.

이십대의 나, 누군가를 아주 많이 사랑했었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그,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그의 하나하나의 몸짓이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았는데도 이슬비에 옷 젖듯 그렇게 그에 대한 마음을 키워갔었다. 그의 발령 그리고 이별.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이별한 뒤에서 더 아픈 것이리라. 그와 헤어지고 처음으로 직장에 휴가를 냈었다. 못마시던 소주 한 병을 사서 마시고 그렇게 하루를 끙끙 앓았었다. 세상이 막막하기만 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죽을 것 같던 그 마음도 조금씩 색이 바래더라. 아마 그때의 난, 내가 더 많이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은연중에 이별을 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와 헤어지고는 그가 나에게 준 아픈 일들만 내 기억속에 차지할 것 같았는데 함께 했던 여러가지 일들이 추억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를 잊어갔다. 만약, 그렇게 이별 때문에 힘들어 할때 트위터에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을 초대하는 멘션을 보았을때 그때의 나도 이런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을까. 이른아침 일곱시에 누군가들을 만난다는게 나로서는 있을수 없는 일 같기도 하지만.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에 참석한 이들을 보면 항공사의 승무원 윤사강, 대기업의 홍보컨설턴트 강사 이지훈, 그리고 이 모임에 참석한 정미도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들의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한다.

 

 

먼저 윤사강을 보자면, 아버지가 프랑수아즈 사강을 좋아해 딸의 이름을 사강으로 지은 아빠가 떠나고 아빠의 부재 때문에 힘들어한 젊은 날의 자신이 보였다. 항공사 승무원으로서 아내가 있는 기장 정수를 먼저 좋아하고 먼저 헤어지자고 말해놓고 실연의 아픔때문에 힘들어한다. 그가 선물해 준것들을 버리기도 하고 또한 못버리기도 한다. 우연히 트위터에 올라온 글을 보고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이란 식당엘 찾아 왔다.

 

 

두 번째 이지훈, 고등학교때부터 사귀던 대학친구이자 MT도 같이 갔고, 여행과 젊은 날의 고민들을 함께한 십년 지기 연인 현정과 헤어지고 자신의 젊은 날들이 사라졌음을 느낀다. 잠못 이루는 밤을 보내던 그는 트위터에 떠 있는 글을 클릭하고 만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을 나가면 자신의 실연이 좀더 깊게 보일까. 실연에 관한 영화를 보며 실연 기념품을 처치해 버리면 잊어버린 연인을 잊을 수 있을까. 함께 했던 추억까지도 다 바람결에 날려버릴수 있을까. 

 

 

왠지 정미도의 미도 라는 이름을 들으면 우리가 영화를 보러 갔을때 영화 마지막에서 자막이 올라갈 때 보이던 외화 번역가 이미도의 이름이 먼저 떠올라 미도 라는 여자의 이름이 생각보다 깊게 각인 되었다. 그냥 스쳐지나갈 줄 알았던, 일곱시 조찬 모임에서의 미도는 이 작품에서도 마치 영화처럼 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스무살의 앳된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녀 또한 사랑의 상처를 갖고 있는 미도. 이별을 해야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그녀의 생각과 행동이 발칙하기만 하다.

 

 

 

인간이 외로운 건 일평생 자신의 뒷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외로움은 바로 그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존재가 두려움 없이 자신의 어둠을 응시할 리 없다.  (242페이지 중에서)

 

모든 연애에는 마지막이 필요하고,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존재할 것 같지 않던 '다시'라는 말이 가슴속에서 자라날 수 있었다. (412페이지 중에서)

 

 

 이별을 선언했지만 그 이별 의식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일것이다.

자신만의 이별의식을 끝없이 행하고, 함께 했던 이와의 기억들로 침잠할때 실연당한 사람들과 아침을 먹으며 실연의 기념품이나 실연에 관한 영화를 보며 자신이 진짜 이별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될것이다. 이별 의식을 하며 이별했던 사람을 떠나보내고 그 사람을 비우게 되는 일. 그렇게 인정을 하게 되는 일.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정리한 후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이다. 사랑을 잃고 난 사람에게 하는 가장 흔한 한 마디가 생각난다. 이별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꼭 남녀 간의 이별만이 아닌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이별은 힘들기 마련.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이별의 아픔도 희미해 지는 것이다. 이별을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속에서 주인공 사강의 이름 때문이었는지 『슬픔이여, 안녕』이라든지 지훈이 읽었던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들이 언급된다. 사강의 소설 외에도 몇가지 소설들이 주인공들이 함께 하는 책이라서 다 읽고 싶게 만든다.

 

 

토요일 오전 일곱시. 누군가는 잠을 자는 시간, 누군가에게는 이제 막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실연당한 사람들이 모여 아침 식사를 하는 시간. 과거의 나에게 말하고 싶다. 누워 퉁퉁 부은 눈으로 울고만 있지 말고 조찬 모임에 참석해 보라고. 헤어진 사람보다 더 따뜻하고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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