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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2년 4월
평점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걸 보고 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기억했다.
지상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인간의 체취를 담고자 살인까지도 불사했던 그르누이의 이야기. 향기를 엊고자 하는 강한 욕망에 그르누이가 어디까지 변하나 하는 내용을 읽으며 그 짜릿함에 몸서리를 쳤었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이 작품 또한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의 부제가 붙은 소설이다. 자신의 모든 욕망을 실현하고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살아있는 좀비를 만들고자 남자를 납치하고 그에게 전두엽 절제술을 시술하는 남자, 쿠엔틴의 이야기이다. 오로지 얼음송곳 하나로 전두엽을 절제하는 남자. 실패를 거듭하고 또 사람을 납치하고 또 실패를 하는 쿠엔틴. 어떠한 죄책감도 없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행하는 그의 모습은 악인 그 자체다. 자신이 사람을 납치하고 누군가를 죽이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오로지 자신의 탐욕에 의해 행동하는 그의 사이코패스적인 행태를 보며 과연 사람이 이럴수도 있는가. 인간의 악의가 어디까지 향하게 되는지 놀라웠다.
비교적 부유한 미국 중산층의 가정에서 살고 있는 서른한 살의 백인 남자, 쿠엔틴.
그는 현재 한 십대 남자아이를 성추행한 일로 집행유예를 받고 보호관찰중이며 정신과 의사한테나 정상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남자로 비치게 한다. 주택관리인으로 일하는 그는 아주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할머니의 잔디깎는 일이며 어머니를 교회에 바래다 주는 등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준다. 점점 나아지고 있는 모습. 하지만 겉모습으로만 그럴 뿐,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좀비로 만들 대상을 찾고자 눈을 부라린다. 그가 만들고자 했던 좀비, 오로지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좀비를 만드는 일을 일기형식으로 쓴 그의 내밀한 일기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되도록이면 부랑자, 다른 마을 사람들, 가족이 찾지 않을 그런 사람을 찾아 거리를 헤매었다. 좀비의 대상을 찾으면 대상자가 다니는 모든 곳을 다니며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의 모든 행보를 그린 살인 지도를 만들기까지하는 철두철미함을 보인다.
쿠엔틴의 겉으로 보여지는 정상적인 생활을 보며 얼마전에 법무부에서 집으로 온 안내장을 떠올렸다. 십대의 자녀가 있는 부모들에게 보냈던 안내장에는 집 근처의 성폭행범의 사진과 그가 한 기록이 있었다. 사진으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법 없이도 살 사람'으로 보여졌다. 착하게, 그리 모나지 않게 순한 모습의 얼굴. 자세히 들여다보니 잘생기까지 한 얼굴이었다. 스물여덟의 순한 인상의 남자가 한 여자를 성폭행하려 했다는 사실이 믿을수 없을 정도였다. 사람은 생긴 모습과는 전혀 다르구나. 의외로 살인자 들이 아주 평범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를 그런 세상이 와버렸다. 제일 무서운게 사람이라 했던가.
그가 써내려간 살인의 일지는 충격적이었다.
그의 정상적인 모습 뒤에 숨은 모습을 어떻게 알아차린단 말인가. 남자아이를 납치하기 위해 한동안 그의 뒤를 따르며 계획하고 그 대상자에게 도움을 청하면 도움을 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그의 집요함과 치밀함. 그의 모든 탐욕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해마다 노벨문학상에 거론된다는 조이스 캐럴 오츠.
그녀의 글은 악인을 다룬 글이면서도 상당히 냉정했다. 한 치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은 것처럼. 악인의 입장에서 쓴 글은 우리를 충격에 빠트렸고 또 우리로 하여금 냉정하게 쿠엔틴을 바라보게 했다. 인간에게 깃든 악, 인간의 밑바닥에 감추어진 악마의 본성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없으면 더 좋겠지만, 이런 악인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우리에게 탐욕에 의한 악의 끝은 어디까지 향하게 될지 우리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