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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삼일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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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미래를 다룬 이야기는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김연수 작가도 근미래의 세계를 그린 SF소설을 썼다. 육체는 없지만 인간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AI와 공생을 할 수밖에 없는가에 관한 질문을 건넨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상실의 고통을 견디는 게 나을까, 기억을 간직하고 AI로 대체한 인물과 한 공간에서 있는 게 나을까.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 만약 아들이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해 살인자가 되었다면, 그 아이를 복제해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고 싶은 게 맞을까. 흘러간 과거를 바로잡기 위한 몸부림인거로 보였다. 만약 미래에도 같은 행동을 한다면 복제를 안 하느니만 못하다.
「눈 내리는 삼일포」는 아픈 딸을 위해 귀한 약재를 구하러 온 가난한 선비 덕암의 이야기로 소설이 시작된다. 덕암은 학질에 걸린 딸에게 줄 귀한 약재를 구하러 왕실의 어의인 수의를 찾아왔다. 그를 돌려보내려 하자 자신을 가리켜 장차 왕실에 들어갈 인물이라고 하며 사정을 말한다. 돌려보내려는 수의에게 그림 한 장을 건넨다. 귀한 그림이라고 하여 호기심에 살펴보니 좀이 슬어 구멍이 나 있었다. 덕암은 현재가 일부러 구멍을 내어 눈 내리는 삼일포를 그렸다고 말한다. 현재의 그림을 받아 들고 귀한 금계륵을 내주었다. 어떤 것을 볼 것인가, 눈에 보이는 것만 그렸던 화가의 깨달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작가는 이 소설을 그림책 작가와의 모임에서 착안을 하였다. 조선 후기 화가 심사정의 망가진 그림을 소재로 하여 작가 이수지가 눈 내리는 풍경을 그림책으로 펴낸 것이었다. 같은 주제로 한 그림책과 소설 모두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책의 표지도 눈 내리는 삼일포 풍경을 그린 것이다.
‘눈 내리는 삼일포’ 하니 겨울이 그립다. 그 뜨겁던 여름을 지나며, 가을의 초입에 서서, 눈 내리는 삼일포의 풍경은 어쩐지 금세 찾아온 겨울 이야기인 것 같다. 단편 「눈 내리는 삼일포」가 조선시대의 학자 이덕무의 이야기인 것 같아 반가웠다. 작가가 이제 역사 소설도 맛깔나게 쓰는구나 싶었다.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야기에 이 글의 확장판인 장편소설도 괜찮겠다.

이렇게 다양한 삶의 가능성이 있었는데, 그 가능성들은 모두 붕괴되고 이 삶만 나의 삶이 됐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269페이지, 「그리고 밤과 가을이」 중에서)
개인적으로 아홉 편의 단편 중에서 조선시대를 다룬 소설들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바꿀 수 없는 과거와 달리 미래는 우리의 의지와 선택으로 바꿀 수 있지 않겠나. 삶의 모든 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마주하고, 항상 하는 마음속 대답은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모르겠다. 어떤 건 꼭 바꾸고 싶긴 하다. 다시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 죽음을 생각할 때, 나의 모든 기억은 저편으로 사라지고 육체마저 사라져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기억될 것이다. 육체의 고통을 더 이상 감수할 수 없을 때 자신의 기억을 이식하여 영원히 머무를 수 있을 것에 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다. 육체를 버리고 데이터의 세계에 머무르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드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근미래에도 인간의 본성이 살아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미래의 세계에서도 인간의 본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김연수 작가의 사유는 더 확장되었다.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의 한 장면을 엿보는 듯 조선시대와 더불어 근미래의 세계를 탐험하게 했다. 어떤 미래가 올 것인가.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어떻게든 바꿀 수 있지 않겠나.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잠시 뒤에 일어날 일을 미리 상상해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시선 또한 확장될 것이다. 다가올 미래를 예견하고, 상상 속에서 존재했던 다른 삶을 꿈꾼다. 하나의 선택으로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만 같다.
작가의 글로 바라보는 세계는 우리 마음속에 살아 움직인다. 책에서만 보았던 역사의 새로운 시선, 현재에 머물러 생각지 못한 미래의 우리를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이 독서 아니겠는가. 김연수 작가의 글이 좋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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