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니주의보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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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니주의보 #정지아 #창비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다. 주말이면 하룻밤씩 자고 오며 작물을 돌본다. 일하고 있으면 동네 어르신들이 지나가며 한마디씩 하신다. 농사는 그렇게 짓는 게 아니라고, 본인의 지식을 주입식 교육하듯 강요한다. 마을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는데, 세컨드의 아들이 몇십억을 들여 카페를 만들었다느니 하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우리에게 무언가를 물어 답변을 해주면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될 것 같아 매우 조심스럽다. 누군가의 수저가 몇 개인지 다 알고 있어야 속이 시원하다는 시골의 특성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만약 평균 나이 칠십팔 세인 마을에서 살아가는 것을 생각해 보라. 아찔하다. 그런 동네에 삼십 대 초반의 두 찌니가 입주했다. 마을의 평균나이를 78세에서 72세로 낮춘 이들과 동네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마음 한편이 울컥해진다.



 

수평마을 마을회관이 북적인다. 마을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윤 선생이 노인들을 소집하여 중대 발표를 한다. 서울에서 귀촌한 성진과 혜진이 서로 여자끼리 좋아하는 레지라고 한다. 수평마을에서 쪼까내자고 마을 주민들과 이장을 닦달한다. 찌니들을 아꼈던 절골댁 마저 발길을 끊었다. 보다 못한 이장의 아내 쑤언은 찌니들을 집으로 데려와 쌀국수를 해 먹이며 그들의 마음을 달랜다.



 

이런 이야기만 있으면 소설이 재미없다. 이들을 쫓아내자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문고리에 호박전을 몰래 가져다 놓은 노인들도 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 같은 상황이다. 겉으로는 레즈비언이라고 날이 선 눈빛을 보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반찬과 음식을 챙기는 것이다. 또한 찌니들의 친구 기희가 삐순이와 삐돌이라는 이름을 가진 반려 닭을 데리고 오며 마을은 더 들썩인다.

 







구례 사투리를 맛깔나게 표현한 글에서 본연의 글맛이 느껴진다. 입말 그대로 표현된 사투리는 할머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들이다. 마치 외래어처럼 신기한 말들의 향연에 저절로 웃음이 배어난다. 팔십이 넘은 할머니들이 살아온 날들,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구박을 당했던 일들,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던 이들의 사연이 낯설다. 노인들은 찌니들을 쫓겨나게 놔두지 않는다. 들여다보면 흠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말하기 좋아하는 노인들은 찌니들의 일을 놀림 삼아 이야기하다가 윤 선생네 집에 일이 생기자 혜진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전라도의 진한 사투리를 글로 본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즐겁다. 정지아 소설의 입말은 더 다채롭다. 사투리가 나오는 부분에서 입말을 소리 내어 읽었다. 마치 할머니들이 눈앞에 있는 듯 그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눈치 보지 않고 할 말 다하는 할머니들의 노골적인 성 표현, 차별과 편견에 갇힌 사람들로 보였지만, 정작 예기치 않는 일이 생기자 서로 나서서 도우려는 마음을 보여주었다. 비싼 식재료를 구입해 장아찌를 담가 한아름 건네주며 미안함을 슬그머니 표현하는 윤 선생을 보라. 정작 중요한 것은, 전복 등 비싼 재료를 사용했지만 음식 솜씨가 없어 냉장고에 고이 모셔둔 것은 어쩌란 말인가.



 

차별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고령화된 마을에서 청년으로 살아가기란 무엇보다 버거운 일이며, 호기심 어린 날 선 시선이 부담스럽다. 다른 한편으로 찌니들에게 의지하는 이들의 행태가 블랙코미디 같다. 힘든 시절을 겪어 왔다. 무서울 것도 없으며, 말에 거침이 없다. 이러한 노인들을 미워할 수 없다.

 



이리 멀쩡하게 이삐고 잘난 것들이 워쩌자고 이상헌디로 빠져가꼬 지 무덤을 지가 판다는디 내 속은 워쨌겄냐? 시방도 속이 쌔롬쌔롬허다. 넘이 안 간 질로 가본들 고생만 씨게 해야. 살아봉게 넘들 다 가는 질로 조심조심 감시로 넘들맹키 사는 거이 젤이드라. (163페이지)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차별과 편견에 사로잡힌 것 같지만, 반찬을 나눠 먹으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가며 오늘을 사는 것이다. 수평마을 사람들과 찌니들의 생활이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전라도 입말을 따라 해 보는 즐거움이 컸다. 정지아 작가의 글이 자꾸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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