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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녕가
이영희 지음 / 델피노 / 202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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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가 쉬지 않고 터지는 어수선한 연말이다. 어떤 게 진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 평소처럼 누구 편을 들지 않고 그저 아무 일 없이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평온한 나날이 좋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이럴 때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 한 곡 듣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시름일랑 저만치 사라져버릴 것이다.
『화녕가(歌)』는 소설가 이영희의 신작으로 윤심덕 같은 노래 신파극 가수가 되는 게 꿈인 화녕의 이야기다. 소설은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기로 겉으로는 일본을 위하는 척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라를 위해 행동하는 지식인 인서와 조선을 침략한 일본인의 아들이지만 그게 부끄러워 조선 이름 현성으로 불리고 싶은 이가 함께 소설을 이끌어간다.

노래가 좋은 화녕은 경성의 음악 학교를 다녔다. 아버지 재후가 마작만 하는 줄 알았더니 비밀리에 나라를 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일본 헌병대에게 잡혀갔을 때 알게 되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라는 아버지의 핏빛 유언과 함께 유모 채단을 살리기 위해 처형당하는 아버지 앞에서 일본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아버지를 죽인 헌병대장에게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여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라고 말하지만, 숨은 이유가 따로 있었다.
화녕은 나라 잃은 백성을 위해 노래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노래로 시름을 잊고 위안을 얻길 바랐던 것이다. 정작 나라를 빼앗아 간 이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게 서글펐다. 화녕에게 노래할 장소를 마련해주려는 인서는 진주에서 이름난 부잣집 남초시네 손자다. 인서를 바라보는 누이 인예는 할아버지의 재취 서씨 부인처럼 갖지 못할 또 다른 꿈을 꾸었다.
비밀리에 나라를 위한 일을 하는 한편, 겉으로는 일본인의 편에 서는 듯한 행동을 하는 이 땅의 청춘들과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을 이기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한 마음이 공존한다. 갖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교만함이 뿌리째 흔들린다.
소설의 배경이 된 진주가 어떤 곳인가. 역사를 간직한 도시다. 노래를 부르는 화녕 이지만, 아마 그런 까닭으로 적장을 안고 남강에 빠졌던 논개가 떠올랐던 것도 사실이다. 역사의 배경이 짙게 드리운 진주와 남강이 배경인 까닭이다. 노래로 아픈 마음을 달래는 화녕과 나라 잃은 백성을 위해 좋아하는 여인을 위해 모든 것을 행동할 줄 아는 이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지 않겠나.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과연 개인의 삶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그저 살아가기 위해 행동한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개인이 있기에 나라가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을 바라느냐에 따라 미래의 삶이 달라지듯, 국가를 이루는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개인이 모여 역사가 된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를 이루는 개인의 경험과 사회 전체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거다.
절제된 문장으로 근현대의 역사를 인물 묘사와 함께 절묘하게 그려낸 소설이었다. 아울러 작가만의 특징인 꽃말을 매개로 한국 현대 가요사를 잇는 저항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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