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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산사 - 10년 차 디자이너가 펜으로 지은 숲속 자기만의 방 ㅣ 자기만의 방
윤설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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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산길을 걷는다. 주변엔 부도와 작은 부처상들이 놓여있고, 일주문의 화려함과 그 안에서 지키고 있는 사대천왕의 무서움에 놀란다. 일부러 차가 다니는 넓은 길보다 좁은 길을 선택한다. 길을 걷다가 만나는 승선교에 시선을 빼앗기고 만다. 물을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가 승선교와 승선교 안으로 보이는 누각의 풍경에 감동하고 만다. 순천 선암사다.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혹은 이른 봄 매화나 겹벚꽃이 필 때면 일찌감치 길을 나선다. 선암사 입구에서 산채정식을 먹고 선암사로 향하는 길은 계절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 같다. 변하는 계절의 느낌을 감상하며 천천히 걷는다.
사진과 글로 만났던 산사의 풍경 대신 그림과 글로 안내한 책이 바로 『주말엔 산사』다. 마치 기다려왔던 것처럼 책을 구매하고 읽기 시작했다. 다시금 산사 여행을 꿈꾸었다. 어딘가에 갈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소가 산사다. 그 지역의 절을 일부러 여행 장소로 정하고 길을 나선다. 전국에 꽤 많은 산사를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 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마다 100여 개의 산사를 탐색했던 저자에게 가장 각별한 산사 7곳을 책에 담았다. 7개의 산사에서 두 군데 빼고는 다녀온 곳이라서 반가움이 더 컸다. 산사 여행을 시작한 게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했던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의 역할이 컸다. 전국의 산사 혹은 문화유산을 탐사해볼 작정을 했으니 말이다.

디자이너인 저자의 그림과 글은 좀 더 책 속으로 이끄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펜 끝에서 묻어나는 산사의 풍경 때문이었다. 산사에 가면 무심코 지나쳤던 사리를 담아놓은 부도의 그림도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되었다. 세밀한 그림에 시선이 향하여 한국 고유의 건축미와 산사 문화를 감상할 수 있게 했다. 고고한 건축물, 너른 마당, 높이 솟은 정원수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한국의 산사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여백의 미가 아닐까 한다. 한국화에서도 여백이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지 않나.
가보았던 장소를 타인의 시선으로 만나면 느낌이 남다르다. 내가 놓쳤던 부분을 다시 볼 수 있고 의미와 용도를 새겨볼 수 있게 했다. 산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비롯해 산사와 관련된 것을 별도로 실었다. 절이 산에 위치하게 된 이유를 보자. 수행자들을 복잡한 속세를 떠나 고요한 곳에서 수행하기 위함이며, 산의 센 기운을 절로 다스리기 위한 풍수지리 때문이었으며, 조선시대에 산으로 쫓겨나 산속에 살게 된 것이다.
부석사를 방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부석사 들어가는 길이 꽤 길어 도대체 언제 입구가 나오느냐며 하릴없이 걸었다. 저자의 글과 그림을 보며 생각이 났다. 계단을 오르고 올라 낮은 입구를 지나 배흘림기둥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진을 찍었었다. 안양루에서 바라보았던 푸르른 하늘과 숲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산사를 방문하다 보면 의외로 화려한 색감을 자랑한다. 꽃창살의 다양한 무늬, 초록색의 문이나 처마, 거대한 4대 천왕의 화려함. 한옥 건물의 고즈넉함이 살아있는 산사의 풍경은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어루만져주는 듯하다.
섬세하게 그린 산사의 풍경에 압도당했다. 네모난 집, 네모난 방에 갇힌 현대인이 꿈꾸는 게 너른 마당과 정원이 있는 집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시골집을 사서 주말마다 다니기도 하고, 땅을 사서 나무를 기르거나 작물을 기르기도 한다. 누구나 갖고 싶은 자기만의 방이 있다. 저자는 자기만의 방을 산사 풍경을 보는 것으로 달랬다. 주말마다 산사를 방문해 그곳의 풍경을 담아 그림으로 그렸다. 그 결과가 이렇게 멋진 책으로 탄생했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주 좋아할 만한 책이다. 산사 여행에 최적화된 안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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