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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을 나누는 기분 (시절 시집 에디션)
김소형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2월
평점 :
#도넛을나누는기분 #창비교육
까마득한 청소년 시절을 떠올려본다. 질풍노도의 시기, 부모에게 반항했던 것도 같지만, 대체로 착한 아이였던 나.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서로의 집을 오가며 어울려 다녔다. 그때의 친구들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만약 그 시절을 떠올리는 시를 쓴다면 어떤 감정을 담을까.
스무 명의 시인들이 청소년 시기를 떠올리며 쓴 시절 시 육십 편을 수록했다. 일명 시들의 초대다. 정확하게 말하면 시인들의 초대라고 해야 옳겠다. 시를 잘 알지 못하지만, 시를 가까이하겠다는 생각은 자주 한다. 실행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늘 시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잊었던 시심을 찾아드립니다’라는 모토를 가진 시절 시집 에디션이다.
오랜만에 시를 읽고, 시가 이렇게 좋았었지. 왜 그동안 잊고 있었을까. 이처럼 기회가 닿아야 자주 읽게 되는 것 같다. 시가 시를 부르는 것 같달까. 시 몇 편을 읽어 보자.

바스락대는 봉투에서
도넛을 꺼내려는
밤의 버스 정류장.
버스는 아직 오지 않고.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아도 좋고.
그런 밤의 버스 정류장.
자, 도넛을 꺼낸다.
그런데 어째서
도넛은 손끝으로 집는 거지.
아슬아슬하게.
까슬
까슬
까무룩
(중략)
꺼낸 도넛을 반으로 가른다.
집으로 돌아가려 함과
집으로 가고 싶지 아니 함처럼.
정확히 나누었는지를 묻지 않기.
(후략)
(132~133페이지, 유희경 「도넛을 나누는 기분」 중에서)
유희경 시인의 시 세 편은 다 옮겨오고 싶을 정도였다. 밤의 버스 정류장의 풍경을 그려보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과 도넛을 꺼내어 반을 갈라 설탕 가루가 떨어지는 모양 즉 '까슬'과 '까무룩'이란 시어가 퍽 인상적이었다. 서윤후 시인의 「하나를 세어 보는 수만 가지 방법」이라는 시는 또 어떤가.
빗방울은 모두 몇 개지?
우산을 나눠 쓰던 네가 묻는다
모른다는 말은
너무나 큰 먹구름일 테니까
단 하나야
셀 수 없는 건 모두 단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중략)
우리는 알 수 없어서
비가 그친 줄 모르고 우산을 함께 쓰고 걷는다.
이 모퉁이만 지나면
집에 가는 길이 나뉘니까.
하나는 쪼개지면 겨우 다시 하나가 된다
조금 더 큰 하나의 어깨 쪽으로
우산을 밀어 준다
화창한 가운데 젖은 자리를
다독이는
햇빛 쏟아지는 (60~61페이지)
예전에 읽었던 시와 조금 달라진 거 같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청소년들의 마음처럼 통통 튀는 시어들의 집합이다. 비와 우산, 빗방울. 잠시라도 같이 있고 싶어 우산 하나로 골목이 나뉘는 모퉁이까지 걷는 그 마음이 짐작되었다. 설레는 기분. 행복한 기분. 오래도록 함께 있고 싶어서 시험 공부라는 핑계를 대고 친구랑 같이 잤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한 시인의 시 세 편이 실려있고, 끝나는 장에 ‘시작 노트’가 수록되어 시를 쓰게 된 배경과 느낌이 드러나 있다. 시를 잘 몰라도 시작 노트로 짐작해보게 된다. 표지도 정말 예쁘다. 마치 금방이라도 뚫고 나올 것처럼 선명한 색감에 기분이 밝아진다. 색깔이 이렇게 마음을 두드리는 것, 오랜만이다. 기억과 경험, 그리고 상상이 묻어나는 시였다. 좀 더 시를 읽고 싶게 만들었다. 어디든 아무 페이지든 펼쳐 읽어도 되고, 필사하며 읽어도 되는 시절 시집을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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