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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본 남자
데버라 리비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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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한 달 가까이 지났다. 그동안 리뷰를 쓰려고 노트북을 켰으나 한 문장도 나아가지 못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도 잊어버렸다. 다시 책을 들여다보니 그제야 조금씩 보이는 것이 생겼다. 신간이 나오면 훓어보곤 하는데 아마도 제목이 인상적이었거나 『아무튼, 사전』의 홍한별 번역자 때문이었던 듯하다.
소설의 주인공 솔 애들러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솔 애들러가 어떤 사람인지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사진작가 제니퍼 모로를 사랑하는 것 같았으나 습관처럼 다른 사람에게 한눈을 파는 모습이 낯설었다. 1988년의 솔 애들러가 런던의 애비 로드의 횡단보도에 섰을 때 차 한 대가 멈추지 않고 다가와 엉덩방아를 찧었을 때 차에서 다가온 남자가 육십 대의 울프강이었다. 울프강은 왜 나이를 묻고 솔을 빤히 바라보았으며, 제니퍼의 나이를 말하자 어린 여자친구가 있어 좋겠다고 했는지를 책을 다 읽고서야 기억해냈다.
제니퍼 모로의 의도대로 애비로드에서 걸어가는 사진을 찍은 뒤 결혼하자고 청했으나 단번에 이별을 선언한 장면에서 제니퍼의 마음은 어떤 거였을까. 아마도 솔 애들러를 꿰뚫어 보지 않았을까.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혼재하여 독자들도 솔 애들러를 따라가느라 마음이 바빴다.
솔 애들러가 통일되기 전의 동독에 연구차 방문했을 때 모든 동유럽 언어 능통자이자 통역자, 감시자인 발터 뮐러의 만남은 의미심장하다. 솔 애들러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인물이기도 하고, 발터의 동생 루나와도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 전에 파인애플 통조림이 있다. 1988년의 동독은 필요한 물건을 마음대로 구할 수 없었다. 런던에서 파인애플 통조림을 가져가기로 했으나 놓쳐 루나와 발터의 어머니를 실망하게 하는 물건이다.
갑자기 미래를 보는 솔 애들러는 발터 뮐러에게 1989년에 동독과 서독으로 나뉜 벽이 무너질 거라는 걸 알지만 말을 삼간다. 또한 그가 세 가지 토마토를 심는 모습도 보인다. 어떤 남자와 함께 토마토를 심고 가꾸는 모습은 솔 조차 낯설었다.
서른 살과 쉰여섯 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183페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내가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나, 하면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쉰여섯의 그에게 사람들이 찾아와 친절하게 대하고 아기 다루듯 보살피는 모습도 낯설다. 그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 갖혀있는 듯하고 좀처럼 과거의 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런 거야, 제니퍼 모로. 우리는 젊고 어리석고 경솔했지만, 그래도 난 한순간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
“이런 거야 솔 애들러.” 제니퍼는 여전히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너는 너무 무심하고 다른 데에 가 있곤 해서, 나로서는 너에게 가닿는 유일한 길이 카메라를 통하는 것이었다.” (276페이지)
통일되기 전 동독에서의 기억과 통일 후의 발터와의 만남, 그의 곁을 지키는 제니퍼의 무심한 배려는 그의 다른 여정을 예상하는 것 같았다. 그는 늘 애비로드를 걸었고, 걸을 때마다 일이 생겼다. 마치 그의 앞날을 예상이라도 하듯. 젊음은 한순간이라고 말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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