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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말들 - 우리의 고통이 언어가 될 때
조소연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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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자살로 인한 고통과 상실에서 벗어나고자 멀리 떠나온 세계에서 어머니의 삶을 비로소 들여다볼 수 있었던 용기와 여성에 대한 인식과 상처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아주 폭력적인 방식으로 어머니의 세계로부터 추방되었다. 이것은 어둠 속으로 추방된 자가 지상낙원의 세계에서 추방된 또 다른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7페이지)
나는 죽은 엄마의 삶을 잘 알지 못한다. 엄마와는 거의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았고, 나와는 좀처럼 속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반면 여동생에게는 이러저러한 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자매들이 모였을 때 엄마와 아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모르는 엄마가 많았다. 아빠를 좋아해 결혼했지만 다른 여자를 마음에 두었던 아빠 때문에 상처받았던 이야기들 같은 거. 엄마와 딸이야말로 멀고도 가까운 관계인 것 같다. 자매 중의 한 명과는 더 각별한 사이로, 다른 자매와는 덤덤한 관계로 지내는 것처럼.

‘폭력적인 방식’이란 어머니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말한다. 첫 문장에서부터 이 책이 가진 고통과 그로 인한 상처가 눅진하게 깔려 있다. 어머니의 외도와 욕망, 자살을 말할 수 있게 된 것. 어머니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며 상실과 고통의 세계에서 언어의 세계로 다다르게 된 것 같다.
글쓰기는 애도와 치유의 과정이었으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자신과 화해하는 시간이었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과 여성이 느끼는 수치심, 히스테리의 역사를 통해 우리 사회에 비친 모성과 여성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게 한다. 수치심의 발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성추행을 당한 사람이 수치심을 느껴야 했던 사회였다.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친족간의 성추행을 수치심의 발로로 여겼던 과거의 시간을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언어의 복원 삶이 사라지면 언어도 사라진다. 자신의 언어를 되찾는 일은 부서진 삶을 되찾는 일이다. 그 사라진 것들을 다시 기억해내고 불러들여 언어의 형태로 재배열함으로써 황무지의 시간에 비로소 생명의 물이 흐르게 하는 일. (221페이지)
떠도는 말들 ‘바람’은 죽어서 떠도는 자들의 ‘울음’이자 ‘말소리’다. 그것은 언어의 형태가 아닌, 구천에서 들려오는 통곡 소리, 서러움, 비명이다. (238페이지)
하나의 장이 시작되면 주제어를 마치 사전처럼 설명해 놓았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유추할 수 있었고, 응축된 설명에 대한 언어의 쓰임새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한 사람의 죽음은 남아 있는 자들에게 깊은 상실감을 준다. 죽음의 이유와 상관없이 고통에 신음한다. 어머니의 삶을 조망하며 위무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발췌 문장을 보라. ‘언어의 기원’과 ‘떠도는 말들’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노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눈물마저 차오른다.
기록은 기억이자 용서이며 나아가 삶의 역사다. 저자는 어머니에 대한 기록을 언어화시키며 어머니를 이해하고자 했다. 어머니가 살아온 날들의 상처를 보듬어 안으며 새로운 언어로 탄생시켰다. 고통스러운 진실을 드러내고 파헤치면서 치유의 시간을 가졌다. 어머니를 이해하며 더 나아가 자신의 새로운 언어로 탄생하는 과정을 묵묵히 써내려간 글이었다. 비로소 안식을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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