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창창
설재인 지음 / 밝은세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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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호랑이가 태몽에 나와 용호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해서 나는 당연히 남자인 줄 알았다. 그런 나의 당연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용호는 여자였다. 여자한테 용호라는 이름이라니. 학교에서 놀림거리 되었을 건 뻔하고 이름을 바꾸고 싶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소설에서 그런 내용이 없는 걸 보니 그냥 받아들였나 보다.


 

용호의 엄마 곽문영이 드라마계의 스타작가였다면, 용호는 그저 그런 대학을 나와 취직하지 못하고 엄마한테 빌붙어있는 상태다. 뭐 하나 잘 해낸 적이 없는 용호와는 반대로 엄마는 새로운 드라마 계약을 했다. 그러던 엄마가 사라졌다. 작업복 일곱 세트와 함께 사라진 걸 보니 이건 그냥 가출이었다. 다만 엄마가 사라지면 드라마 제작사 피디는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다른 사람은 곽문영의 딸이기에 용호도 특별한 재능이 있을 거라고 여기지만 용호는 취준생일 뿐이다. 그런 용호에게 오혜진 피디는 곽문영 작가가 돌아올 때까지 대본을 써달라고 한다.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은 주인공이어서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대학 졸업을 유예하며 4학년으로 버티고 있는 함장현과 함께 드라마 대본을 시작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맞이한다. 초짜가 쓰는 대본이 무사통과였던 거다. 무언가 너무 잘 풀리면 문제가 있는 법. 오혜진 피디가 엄마가 있을 만한 장소를 슬쩍 흘리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곁에서 지켜본 적이 있지만, 기억을 잃어간다는 건 큰 불행이다. 아팠던 기억일망정 가슴 속에 품고 있어야 내 것이 되는 법. 과거의 기억,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이야말로 고통스러울 정도로 슬픈 일이다.

 


광혜암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습관적으로 해왔던 일들은 잊지 않는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청소하고 씻기는 일 같은 것. 자신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을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는 베풀 수 있다는 거다. 아픈 엄마를 보살피는 함장현과 엄마를 돌보는 곽용호가 바라보아야 하는 장소는 힘든 일임에도 공동체로서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엿본다. 비록 슬픈 일이지만 상황을 받아들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배울 수 있다.

 


아무리 기억을 잃는다고 해도 기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감정은 남는다. 내가 광혜암에서 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더 솔직히 표현하면 했지. (207페이지)


 

기억을 잃어가는 순간에도 감정은 남아있어서 습관처럼 행동하는 것이 있다. 아이를 씻기고 먹이는 일이야말로 해왔던 일이 아닌가. 죄책감으로 기억을 잃어가는 이를 바라보며 새로운 감정과 마주한다. 나를 방임했던 엄마가 아닌, 내가 있어 오늘의 작가가 된 엄마를 이해하는 순간이다. 앞으로의 용호와 다른 이들에게도 창창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겠는가. 그 변화의 순간에 서 있는 자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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