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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십여 년 전에 심은 단풍나무가 죽었다. 비가 계속 내리고 난 후부터였다. 초록색이던 나뭇잎이 거뭇거뭇해졌다. 한 달째 내리는 비 때문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 여겼다. 갈색으로 물들어있는 나뭇잎이 내년 봄이 되면 나아질 거라는 마음을 품고 있다. 겨우내 땅속에서 잘 견뎌서 내년에는 초록색 잎을 틔우길 바라고 있다.
씨앗에서 움튼 어린 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키 큰 나무 그늘에서 자라 큰 나무가 되어 다른 어린 나무를 감쌌다. 어느 날 두 발로 걷는 인간들이 나타나 나무들을 베었다. 밑동만 남겨진 나무에도 새싹이 나와 자라기 시작했다. 줄기는 둘이나 뿌리가 하나로 얽힌 나무는 사람에게 파괴된 적이 있었다. 나무 또한 인간을 파괴한 적이 있다.
장미수는 신복일과 결속하여 다섯 사람을 낳았다. 일화, 월화 금화, 목화, 목수는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금화는 쌍둥이 목화, 목수와 함께 숲속으로 갔다. 금화의 머리 위에 커다란 나무가 입을 벌리듯 기울었다. 쌍둥이는 금화를 빼내려고 했으나 커다란 나무와 금화는 꿈쩍하지 않았다. 어른들을 찾아 나섰던 목화가 다시 돌아왔을 때 목수는 나무 밑에 깔려있었고 금화는 사라졌다. 목수는 그때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해 오래도록 괴로워했다.
열여섯 살이 된 목화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사람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놀란 목화에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을 구하라는 말이었다. 비슷한 꿈들이 이어지고 단 한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무가 지정한 단 한 사람을 구하지 않았을 때 목화는 아프기 시작했다. 신이 내린 벌이었다. 목화는 엄마 장미수와 달리 자기를 소환하는 신이 나무라는 걸 알았다. 목화와 엄마 장미수, 할머니 임천자까지 이어지는 숙명이었다.
할머니 임천자가 단 한 사람을 구해내는데 순응했다면, 장미수에게 신은 부당했으며 악의 없이 잔인한 존재였다. 서목화는 첫 소환부터 목소리와 동시에 나무를 느꼈다. 목화는 나무와 사람 사이의 ‘중개’로 여겼다. 임천자와 장미수, 서목화가 단 한 사람 만을 구할 때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사건을 떠올렸다. 세월호 사건과 이태원 사고였다. 그 사건에서도 주인공처럼 누군가 단 한 명을 구할 수도 있었을 거다. 모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안타까워했을 것이며, 나무의 명령을 거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야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어떤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랑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떤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끝이 없다.
어떤 사랑은 너무 가까이 있어 시작이 없다. (155페이지)
우리는 오늘을 산다. 내일을 위해 산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를 위해 사느냐고 묻는다면 모두 자기를 위해 산다고 할 것이다. 모든 순간, 우리의 삶에 신이 개입한다면 어떨까. 삶과 죽음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맬지도 모르겠다. 내가 구하고 싶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어야 할 때, 만약 누군가를 해한 사람을 구해야 할 때 거역하고 싶지 않겠는가. 오히려 인간보다 더 영원한 삶을 누릴 생명체, 식물이 인간의 삶에 개입해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지구에 나타난 여러 현상과도 맞물린다.
죽음에 대한 애도이면서 신화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무와 인간에 얽혀진 이야기, 대를 이어오는 삶의 책임과 무게, 신이 준 역할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는 고대 신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현재의 삶을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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