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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 ㅣ 자이언트 스텝 2
김서해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7월
평점 :
타인의 존재가 내게로 다가오는 순간만큼 반짝이는 것도 없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 순간. 우리는 마음을 열고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듯 대화를 나눈다. 못 할 말은 없다.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음식, 하고 싶은 것. 친구나 가족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 비로소 살아있다는 걸 느끼고 싶은 거다.
미술대학원에 다니는 이해인은 서점에서 영원을 만났다. 영원은 시카고에서 온 밴드의 기타리스트다. 영원은 해인에게 질문을 한다. 해인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는 듯.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해킹당해서 플레이리스트가 다 날아갔을 때 가장 먼저 추가할 노래가 무엇인지 물었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나오는 히사이시 조의 ‘어느 여름날’이라고 말해줬다. ‘어느 여름날’은 해인이 주희에게 춤을 배울 때 들었던 음악이었다.
춤을 좋아했다. 주희와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함께 다녔다. 주희가 서울에 있는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하며 헤어졌다. 이별할 때 해인은 어쩐지 영영 만나지 못할 것처럼 울었다. 주희가 죽자 해인은 춤을 좋아했던 이유가 주희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다. 주희의 기억이 해인을 괴롭혔다. 그래서 영원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살기 위해, 새로운 삶을 위해.
한 사람의 존재를 슬픔의 복제로 여길 수도 있을까. 슬픔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비로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모든 슬픔의 기억들은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아픈 영원을 돌봐주고, 그와 함께 음악연습실에서, 거리에서, 술집에서, 대화하며 시간을 보낸다. 영원과 나누었던 모든 대화가 위로의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나에게 침잠하는 아주 작은 위로.
남들이 어떻게 보든, 나는 그 가짜 같은 말들이 좋았다. 머뭇거림마저 정해진 대본의 일부 같은데도 이상하게 내가 나눠본 대화 중 가장 생생하고 솔직했다. 이미 수놓인 미래를 전혀 거스르지 않는, 운명 같은 정갈한 통사와 자연스러운 쉼, 그리고 열정적인 톤이 나와 영원 사이를 바느질하는 것 같았다. (81페이지)
너와 대화하면 머릿속이 맑아져. 우린 말이 잘 통해. 너와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 잘 들어주고, 듣기 좋은 소리만 하잖아. 그런데 너도 나와 대화하는 게 재밌고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어서 …… (152페이지)
이 소설이 좋았던 이유는 슬픔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자신에게 찾았다는 사실이다. 극단으로 자신을 몰고 가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이해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내가 나를 만나는 시간. 먼 길을 돌아왔지만, 와야 했다.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아파할 시간, 충분히 슬퍼할 시간이 필요한 법. 그렇지 않으면 더 아픈 법이다. 시카고에 영원을 만나러 간 해인의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었고, 대화하며 제대로 살아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는 아파하며 오늘을 살고 내일을 꿈꾼다. 슬픔에서 벗어나는 해인 만의 방법,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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