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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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안타까운 기억들이

떠올라 과거의 인물들을 찾아 그곳에서 삶을 반추한다. 슬펐던 삶을, 사랑했던 사람의 흔적이 있는 장소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은 삶의 한 형태를 보는 것 같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해도 정작 죽고 싶지는 않은 게 본심이다. 죽은 자들이 말한다. 삶에서 가장 아쉬웠던 순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한강 오리배 선착장에서 엄마와 희재를 기다리는 오리배. 살아있을 적에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뭔가 분위기 반전이 필요할 때 가던 곳. 형체가 희미해지도록 애타는 기다림이 표현되어 있었다. 심야의 질주는 좋아했던 배우 강산의 집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한 택시 운전사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화려했던 삶을 살던 배우가 침대에 누워 지내다가 레토르트 음식을 겨우 먹으며 지내는 장면을 본다. 갑자기 연기를 할 수 없었던 이유, 술을 입에 댈 수밖에 없었던, 떠나버린 딸의 방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걸 보며 어느 한순간 나락을 경험하기도 하는 것 같다.




 


산 사람에게 있어 죽음이란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이지 온전히 자신의 것은 아니므로, 시간이 오래 지나면 언젠가는 그것을 버릴 수도 있게 된다는 걸 나는 배워 알고 있다. (48페이지, 오리배중에서)

 


세상의 끝에서 지우와 혜수는 자살하러 바다에 갔다가 택시 운전사에 의해 죽었다. 죽으려고 간 바닷가였지만 정말 죽고 싶지는 않았다. 점점 몸이 희미해지며 지난날을 반추한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시골, 충동적으로 참석한 동창회 모임에서 혜수가 따라와 함께 3년을 살았다. 귀신이 되어 해당화가 핀 거리를 거니는 두 사람.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들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아홉 번의 생은 고양이의 생을 다룬다. 한 생을 건너뛸 때마다 좋은 어미, 좋은 주인을 만나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았다. 다섯 번째 삶에서 선인장을 만나 특별함을 느꼈다. 다음 생이 없어도 전혀 두렵지 않은 고양이의 삶에서 문득 우리 고양이는 몇 번째의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소중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혹시 이 절벽, 이곳이 세상의 끝은 아닐까. 우리가 세상의 끝에 다다른 거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온 사위가 밝아지며 점점 빛 속으로 잠겨 들고 있는 이곳이 세상의 끝이 아니라면 어딜까.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없는 이곳이. (157페이지, 세상의 끝중에서)

 

 

영원의 소녀는 고양이의 세 번째 삶에서 숲속의 통나무집 주변 호수에 뛰어들어 죽은 여자가 나온다. 영혼의 삶을 찾아 떠난 애인의 집으로 찾아간 유령. 아이를 사고로 잃어버린 인간의 절망. 그를 지켜보는 그녀는 마음이 아프다. 이 세계의 개발자는 책상에 앉아 그대로 죽은 한 개발자가 나온다.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는 그에게 신은 말한다. 좋은 곳으로 간다는 신의 말이 귓가에 어른거린다. 죽으면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마음껏 볼 수 있을까.





 

죽은 사람이 주인공인 소설이 흔했던가. 산 사람의 미래를 보여주는 죽은 자들의 생각. 각자의 삶은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죽은 존재라고 해서 다른 죽은 존재를 볼 수도 없으며 이전의 삶처럼 외롭다고 여기기도 한다. 이처럼 죽음도 삶의 한 형태다. 감정을 똑같이 느낀다는 게 의외다. 죽음 이후의 삶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나름 괜찮을 것도 같다.


 

작가의 문체가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다 읽고 살펴보니 두 편의 단편을 읽었던 거다. 작품을 처음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낯설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해본다. 좋은 작품 많이 내주길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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