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6
문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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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자가 돌아온다. 떠나보냈던 사람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떠나는 사람이 되는 것을 꿈꾼다. 한 장소에 모여든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사람들의 관계는 마치 어머니의 품 안에 있는 것처럼 아늑하다. 주저하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 다정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는 지원은 아버지의 집을 처분하려고 휴가를 냈다. 아버지를 미워했던 지원은 어릴 적 친구와도 연락하지 않았다. 교정보는 일을 좋아했던 지원에게 아버지의 집은 추억을 떠올리는 매개였다. 누군가 놓아둔 귤 하나에 잊었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귤에 얽힌 다정한 시절이 있었음을 뒤늦게야 생각해냈다.




 


모텔 카리브에서 한 남자가 죽었다. 죽은 남자가 사용한 401호를 찾는 여자가 있었다. 다른 이들에게 내주지 않았던 방이었다. 한 달을 묵겠다고 계산한 여자는 몇 달째 그 방에 머물렀다. 그 여자는 오전 10시쯤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면서 영식 아저씨의 포장마차에서 머물다 왔다.


 

재인은 그린 룸 안에서 죽고 싶다던 P를 떠올렸다. 서핑 선수가 꿈이었던 그는 왜 낯선 모텔에서 죽었을까. 그 죽음을 이해해보려고 했다. 서핑 카페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모텔에 들어가기 전에 들렀던 영식의 포장마차는 따뜻함이 있었다. 따뜻한 국물에 밥 한 그릇은 그리움을 대신하는 듯했다. 미국 사람인 재인에게 국물의 시원함을 알게 해준 장소였다. 우리가 음식에 감동하는 이유, 음식이 주는 따뜻함 때문이다.





 

영식은 최 선장의 부탁으로 쑤언을 룸메이트로 받아들였다. 쑤언은 조업이 없을 때면 눈치 빠르게 영식의 일을 도왔다. 집에서도, 포장마차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이를 잃은 뒤 술에 절어 살던 영식을 살린 건 일고여덟 살쯤의 주미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다가온 한 아이가 그를 현재로 이끌었다. 삶은 이처럼 우연한 순간에 선택받는다. 고향 마을을 떠나 한국에 온 쑤언은 열한 살 딸 누에게 편지를 쓴다. 조업 중에 커다란 고래를 보았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귤을 계단참에 올려두었다. 봄빛처럼 따스한 기운을 얻은 쑤언은 희망을 보았다.

 


귀가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 듣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토록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무수히 많은 소리 중에서 나만을 위한 메시지를 어떻게 구별해낼 수 있는 걸까. (105~106페이지)

 

 

안온함과 희망은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고래와 귤과 포장마차, 따뜻한 음식이 주는 안온함에 마음을 연다. 상처가 있지만, 상처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품어주는 마음이 있어 가능한 것처럼. 그러고 보면 관계의 변화는 의외의 순간에 찾아오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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