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2
이주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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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공간에 관한 이야기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옛집 그리고 현재 언니와 살고 있는 집. 방 하나 너머로 알 수 없는 감정이 존재하는 공간. 하나의 공간 속에서 각자가 하고 싶은 걸 하며 분위기에 순응하게 되는 공간을 그려본다. 숨겨둔 사건 같은 건 말로 하지 않고 그냥 담아둘 뿐이다. 비록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마음. 숨겨둔 마음에 침잠하여 울음을 터트려도 그냥 바라볼 뿐이다. 어쭙잖은 위로 같은 거 하지 않아도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 다시 평정심이라는 걸 갖게 되는 그런 마음들을 담았다.


 

둘에서 셋이 되면 변하는 게 있을까. 할머니와 유리, 유리와 언니, 언니와 언니의 동생. 이러한 관계에서 유리와 언니 그리고 재한 씨가 들어오면서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하고 바닷가로 놀러 가기도 하는 등 관계의 변화가 온다. 셋은 불완전한 숫자인 것 같다. 짝이 맞지 않아서일까. 둘과 넷 사이의 셋. 셋이면 둘은 짝이 될 수 있지만 하나가 남는다. 남은 하나는 쓸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혀 쓸쓸하지 않다면 각자의 생각에 빠져있는 거다.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는 공간에서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관계다.





 

나는 괜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을 하기도 하고 뭔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휴대폰을 보기도 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을 해놓고서,

  누구 기다려요?

  할머니가 물어오면

  아뇨!

하고 급히 대답하곤 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하며 갈 길을 가신다. (51페이지)

 


유리는 휴무일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몇 년 전에 할머니와 살았던 시골집에 간다. 지금은 다른 할머니가 사는 집. 집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집 밖을 한 바퀴 돈다.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무슨 이유로 옛집으로 향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말할 필요를 못 느끼는 듯하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면서도 말해주겠지 하고 기다리다가 어느 순간 포기하고 만다.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괜찮다, 말해주네. (9페이지)


 

소설의 첫 문장처럼, 괜찮다고 말해주는 소설 같다. 아픔을 드러내지 않아도, 말없이 이해와 공감을 해주는 사람들. 따로 또 같이 행동하는 이들 때문에 오늘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유리와 언니가 밤 산책할 때 굳이 나란히 걷지 않아도 괜찮다. 거리가 조금 벌어져 자기만의 속도로 걸어도 아무렇지 않다. 결국엔 함께 집에 돌아갈 것이므로 괜찮다. 함께 집으로 돌아갈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말이다.

 


그날은 딱 이 정도로 쌀쌀한 날이었다. 어제의 쌀쌀함도 내일의 쌀쌀함도 아니고 딱 오늘 정도의 쌀쌀한 온도와 바람. 나만 알 수 있는 똑같은 날씨를 만나면 나는 잠시 그 어느 날로 돌아간다. 돌아가서 따뜻한 밥과 국과 물과 아이스크림과 새 칫솔을 떠올린 뒤 다시 나온다. (94~95페이지)




 


재한 씨가 바다 보고 싶지 않으냐고 물어올 때 유리는 지나고 싶은 터널을 들러줄 수 있는지 묻는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터널을 지나면 언니는 쓰고 싶은 글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해서다. 이해와 배려가 배어난다. 긴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우리는 변하게 될까. 쓸쓸했던 감정 따위 파도를 향해 버릴 수 있을까. 따로 또 같이 어울리며 사는 게 우리 삶인가 보다.


 

아무리 외롭고 쓸쓸해도 나를 위하는 사람 때문에 오늘을 사는 것 같다. 친자매가 아니어도 복권 당첨금을 나눠줄 수 있는 사이, 살아온 이야기를 주절주절 꺼내도 조용히 듣고는 합격을 말해주는 사람 때문에 오늘을 버틸 수 있다. 쓸쓸함을 내비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이해하며 공감의 몸짓을 하는 것.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뭇국을 끓여내듯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살아갈 이유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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