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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과 나의 사막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3
천선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0월
평점 :
영화나 소설 속에서만 보던 로봇이 우리 실생활에 처음부터 있던 존재처럼 살아갈 날이 머잖았을까. 로봇이 나오는 소설을 읽어도 어쩐지 근 미래의 우리 모습인 것만 같다. 우리 곁에서 숨 쉬고 먹고 시간을 보내는, 어쩌면 없어서는 안 될 단 하나의 친구인 것만 같다.
멸망한 세계, 사막에서 함께 살던 인간, 랑이 죽었다. 다른 인간들보다 이른 나이에, 랑의 엄마 조가 죽은 나이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랑을 묻고 함께 떠나자던 지카의 권유를 뒤로하고 랑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곳으로 떠났다. 과거로 갈 수 있다는 땅이었다. 그 여정에서 고고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세상의 모든 진리를 아는 자 버진,
푸른 스카프를 두른 인간의 시체,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데도 주인을 위해 트랙터에 부딪치며 길을 만드는 로봇 알아이아이,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외계인 살리.
전쟁 시대에 만들어진 고고는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지구를 망하게 하는, 즉 인간을 죽이기 위한 로봇이었을까 봐 두렵다. 과거를 아는 자, 과거의 땅을 향해 고고는 거친 사막을 가로지른다. 삶의 목적을 찾는 동시에 고고의 그리움에 대한 여정이 펼쳐진다. 로봇에게 마음이 없다고 여겼지만, 불쑥 떠오르는 랑의 영상이 그를 살아있게 한다. 사막에 파묻혀져 있던 그를 발견해 고쳐서 고고라는 이름을 주었던 랑. 랑의 엄마 조가 죽고 묻은 자리에 물을 뿌려주며 눈물을 머금던 랑. 랑은 그것을 마음이라고 했고,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건 그리움이라고 했다.
너도 감정이 있다는 말처럼 들려. 너는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것처럼 느껴져. 감정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132페이지)
감정은 교류야. 흐르는 거야. 옮겨지는 거고, 오해하는 거야. (133페이지)
고고는 랑이 그리운 것이다. 랑과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리고 더 이상 그와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게 슬픈 것이다. 오로지 랑을 추억하며 사막을 건넜다. 마치 희망의 땅이 저 너머에 있는 것처럼 나아갔다. 애도의 여행일망정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아직도 주인을 기다리는 로봇 알아이아이에게 팔 하나를 떼어줄 수 있었던 것도 랑에게 배운 것이었다. 랑에게 배운 그대로 애틋함을 느꼈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측은함, 안타까움.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도 랑에게 배웠다.
삶의 목적을 잃었다고 해서 죽을 수는 없다. 가르친 대로 세상을 보기 마련이다. 랑이 주었던 마음과 감정에 대하여 생각하고 삶의 목적이 다른 데 있지 않음을 느낀다. 랑을 떠올리고 그리워하는 시간이 곧 랑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자기의 시간과 다르지 않았다. 생각하던 바대로 움직이니 과거의 땅을 아는 살리를 만날 수 있었다.
랑을 다시 만나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내가 만난 사막에 대해. 너를 만나기 위해 걸어온 나의 사막에 대해. 그렇게 늙어가는 랑의 곁에서, 조금씩 망가져 가는 내 몸으로 이야기 하겠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로소 랑과 시간이 맞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한다. 이번에는 너와 함께 늙어갈 수 있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랑을 떠올리며, 더 깊은 어둠으로 내려간다.
간절하게. (144페이지)
살리의 모습에서 어린 왕자를 떠올렸다. 마차부자리라고 부르는 별에서 온 살리, 황금빛 홍채와 머리칼을 가졌으며 아직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살리. 사막에서 혼자 나무를 친구 삼아 지냈던 그는 고고를 보자마자 쉴새 없이 말을 늘어놓았던 살리였다. 인간처럼 생긴 로봇을 보며 친구를 기다렸던 감정을 공유했다. 친구를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을 것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듯하다.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느끼고 의지가 되는 듯하다. 그게 꼭 인간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로봇이든 내 마음을 전해줄 수 있다면 그게 친구인 것이다. 상실의 아픔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듯하다. 상실의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고고를 보며 우리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가 친구라고 여기는 것에 대하여,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에 대하여.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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