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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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이면 엄마의 5주기다. 자매들끼리 모여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 등을 만들어 올린다.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으며 추억들을 소환한다. 엄마를 생각하면 가장 첫 번째, 음식이 떠오른다.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이 그리워 우리끼리 만들어 먹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텃밭에 있는 고구마 순을 뜯어 껍질을 벗기고 솥에 삶아 된장과 고추장, 고춧가루, 마늘, 매운 고추, 참기름을 넣고 마지막에 식초 몇 방울을 넣어 무쳤다. 여름에 잠깐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으로, 신랑은 신랑대로 우리 자매들은 자매들대로 추억의 음식이다. 엄마와 음식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가 없다. 우리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엄마의 음식과 함께 해왔으니 말이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추억을 떠올리고 맛을 구현해내려 애쓴다. 김치도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엄마와 비슷한 맛을 내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엄마가 살아 계신 분들은 크게 와 닿지 않겠지만 엄마의 죽음을 경험한 분들이라면 공감할 거 같다. 책의 첫 장에서부터 엄마가 생각나 울며 읽었다. 아시아의 음식재료를 파는 곳, 한아름 마트의 H마트에 갈 때마다 운다는 저자의 글은 날 것 그대로의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정체성의 혼란과 더불어 엄마와의 관계도 멀어졌지만, 엄마의 암 투병을 지켜보는 이의 상황은 우리를 슬픔의 순간으로 이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상실감에 빠져 있을 때, 저자를 다시 일어나게 만든 원동력이 음식이었다. 엄마가 해주었던 음식, 아팠을 때 먹었던 잣죽과 알맞게 익은 총각김치를 담았다. 잊지 못하던 그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엄마를 추억했다. 엄마를 추억한다는 건 함께 먹었던 음식을 떠올린다는 것. 엄마의 투병 기간을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잃었을 때에야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엄마가 암에 걸렸을 때 저자는 엄마에게 긍정의 기운을 뿜으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될 줄 알았다. 엄마를 힘들게 했던 과거를 되돌릴 수 있을 줄 알았다.

 


아직 뭐든 할 수 있을 때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보내고 싶었다. (174페이지) 이 문장은 울컥하게 만든다. 나는 엄마가 더 오래 사실 줄 알았다. 어쩌면 일 년, 아니면 더 오래.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을 기억했다. 그렇게 빨리 가실 줄 알았으면 더 잘할 걸. 시간이 지날수록 사무치게 그리울 줄은 몰랐다. 어떤 분이 하신 말씀 중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꿈에 나타나지 않아 서운하다는 말을 들었었다. 일 년에 몇 번 엄마가 꿈에 나오실 때가 있다. 무척 반갑다. 보고 싶었던 엄마를, 건강한 모습의 엄마를 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아마 그리움이 가장 간절해질 때 나타나지 않으셨나 싶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기록은 기록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기록을 남기는 일이다. 비록 슬픈 기억이지만 글을 씀으로써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거다. 다시 살 수 있는 원천도 엄마에 대한 기억과 기록에서 나왔다. 엄마와 딸은 특별한 관계인 것 같다. 저자와 엄마 정미 씨와의 관계,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 은미 이모에 대한 기억, 나미 이모를 바라보며 느끼는 엄마의 자리. 엄마의 자매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아시아인의 외모로 미국에서 살아가기는 정말 힘들 것 같다. 정체성은 우리를 지켜주는 원동력이다. 정체성의 혼란으로 아픔을 겪었고, 한국에 올 때마다 느꼈던 비슷한 외모에서 오는 편안함, 오히려 예쁘다고 말해주기까지 해서 기분 좋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나라에서 사는 사람은 느끼지 못할 감정들일 것이다.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기에 백 퍼센트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고 봐야겠다.

 


엄마가 나를 키우며 내가 사랑하도록 만든 것의 원천이고, 내가 기억했으면 하는 맛이고, 내가 절대 잊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이었다. (345페이지)

 


엄마를 향한 사랑과 기억과 소소한 기록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내 엄마의 기록이 없어 안타깝지만, 엄마의 사진을 한곳에 모으고 각자의 추억을 자매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다. 엄마를 추억하는 다른 방법이다. 엄마의 기일에 우리 형제들이 모이면 각자의 기억을 말하며 엄마를 추억할 것이다. 그리운 엄마를 한번만이라도 보았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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