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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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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어떤 경험을 하면 이토록 고통스러운 글을 쓰는가, 였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거나 주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다. 고통스러운 기억과 폭력적인 성향을 안고 살아가는 현재의 여성을 그린 글이었다. 남자와 여자, 여자와 여자, 자매 혹은 부모와의 관계도 쉽지 않아 보였다.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졌음에도 더디 읽혔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였다. 소설 속 인물들의 고통이 나에게까지 다가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불편했던 소설이었다.


 



 

 

스무 편의 단편이 속해있는 소설에서 가장 오랫동안 나의 마음속에서 부유했던 글은 이끌림장기 배달부였다. 이끌림이 어떤 내용인가 하면, 물속에서 헤엄치는 여자아이는 물이 좋았다. 육지에서는 버거운 호흡이 물은 여자아이의 숨을 막지 못했다. 그런 아이가 수영장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은 당연하다. 언젠가 수영하러 가려고 했을 때 부모가 말렸다. 수영하고 싶어 어깨가 욱신거리던 날 수영장에 폭탄이 떨어져 수영하고 있던 친구 두 명이 죽었다. 언니와 둘이서 고국을 떠나는 한 소녀의 가슴 저린 이야기였다.

 


어쩌면 이 소녀와 쌍벽을 이루는 가슴 저린 이야기로 보이는 게 장기 배달부였다. 밀밭을 가르는 콤바인에 들이받아 손이 썰려 나가 한동안 발에 붙이고 다녀야 했던 아나스타샤의 이야기다. 봉합 수술 후 열일곱 명의 아이들이 있는 먼 친척 아주머니의 집으로 가게 되었던 소녀는 그곳에서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배웠다. 남자아이 키릴이 아나스타샤가 애지중지하는 원숭이 인형구달의 손목을 잘랐다. 아나스타샤는 키릴을 혐오하게 되고 그가 어떻게든 죽기를 바랐다. 예를 들면, 열다섯 생일에 신장 한쪽을 팔았던 것처럼. 장기 배달을 하던 아나스타샤가 이름을 날리고 어느 날 거금의 수고비를 받게 되는 일을 맡는다. 배달해야 할 위험한 장소에서 뜻밖의 인물과 마주친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아나스타샤는 어떤 행동을 할까.

 


나는 충격에 빠졌다.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 해도 되는가.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장기 밀매를 버젓이 행한다는 게 충격이었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인간의 존엄성 따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선한 모습 뒤에 감춰진 악랄한 모습. 그게 인간의 다른 모습인 거다.

 


그런 삶을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도로가 바다에 막힌 곳에서, 시간의 흐름을 영원히 가로막을 수 있을 것처럼, 잠자는 것 같기도 하고 내일이 없는 것 같기도 한 삶을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다른 방식의 삶은 그를 앞으로, 결국 죽음으로 나아가게 할 테니까. (278~279페이지, ‘I’를 잃는 법중에서)

 


배제되고 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성 매매를 하는 여성들, 마약에 중독되었던 대학교수가 돈을 주고 집안으로 마약중독자를 들여 그 시간만큼 쉬게 했던 건 작은 위무의 시간이었다. 우리가 내민 작은 손짓에도 누군가는 따뜻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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