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곽재식 지음 / 비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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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만 존재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외롭지 않을까, 라는 우려가 먼저 들지만, 그 세계에 적응하다 보면 오히려 다른 사람과 공존해야 하는 게 더 곤란해질지도 모르겠다. 오직 한 사람뿐인 지구에서 자기조차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을 수도 있는 진실 앞에서 한번쯤 우울해지지 않을까. 지구에서 단 한 사람만 존재하게 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결혼한 부부가 한 사람만 자녀를 낳다가 그것도 힘들어해 낳지 않게 되면서 일어난 결과다. 아이를 낳지 않는 현재 상황에 맞물려 우리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잔잔한 재미가 있었다.

 


SF소설의 특성이 멀지 않은 우리의 미래를 유추해볼 수 있다는 것과 이런 세계면 어떨까 즐거운 상상을 해볼 수 있다는 거다. 작가의 10편의 소설은 우리가 주변에서 있음 직한 인물들을 표현했고,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다.


 


 

 

기억 밖으로 도주하기의 결말이 놀라웠다. 갇힌 곳에서 도망친 사람이 떠오르는 기억 속 그녀에게로 가닿는 부분이었다. 미래의 어느 공간, 자신을 기억해내려는 한 인물의 고뇌를 엿보는 것 같았는데 손목에 매달린 리본 하나가 우리 주변의 누군가를 보는 것만 같았다. 주름과 검버섯이 가득한 손, 그 손에서 느껴지는 쓸쓸함 혹은 슬픔. 우리가 맞이하여야 할 미래일 거 같아 씁쓸해졌다.

 


누구나 이런 경험 하나쯤 있지 않을까. 슈퍼 사이버 뱅크 120에서처럼 갑자기 주어진 시간 안에 업무 처리를 해야 하는 것. 웹에서 하는 일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펼쳐져 킥킥거리며 웃었다. 얼마 전 기억이 떠올랐다. 국민연금 가입 내역을 볼 수 있다는 알림이 와 어플을 깔고 로그인을 하던 중 잘되지 않아 몇 번이고 이메일 주소와 비번을 적었었다. 자주 쓰는 이메일 주소가 아니어서 헤맨 거였는데 얼마 뒤 해당 사이트에서 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본인일 경우 비번을 바꾸라는 내용이었다. 이 단편도 내가 겪은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회원가입하기 위해서 브라우저, 시스템 오류, 보안프로그램 설치, 재부팅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난다. 물론 120분 안에 서류 발급해서 제출해야 하는데 시간은 빠듯하다. 시간 안에 제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웃긴 게 전화 받은 사람이 업무 담당자가 되어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박사가 헤매는 과정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기에 공감하며 읽었다.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운 요즘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의견이 엇갈리면 상당히 불편하다. 판단이라는 단편과 같은 일이 전혀 없다고 보기 어렵다. 옮겨서 입사한 새 직장에 출근한 지 이틀째인 김 대리의 태도에 대하여 말하는 이 과장의 목소리는 전혀 함께 근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다. 고개만 까딱했다며, 말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친근한 웃음을 지으면서 인사 안 했다고 말이다. 이 과장이 어떤 마음으로 말했을지 짐작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김 대리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예상하지 못했나. 선배랍시고 상사랍시고 이 과장처럼 사람을 대한다면 일하고 싶지 않은 회사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좀 더 세심히 연구해보면 이 빵 속에 사람이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비로운 성질이 포함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 학계의 최신 이론이다. (21페이지,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중에서)

 


표제작인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은 사람이라는 생물체를 탐사하는 보고서다. 자신에게 필요한 산소와 에너지를 담고 있는 몸속의 붉은 액체를 별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보고 탐구하는 외계생명체다. 그 원인을 빵에서 찾는데 빵에 특별하고도 신비로운 성질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헌혈에 대한 작가의 기발한 시선을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더불어 헌혈의 중요성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독자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으며 마음속으로 헌혈을 생각할 수 있고, 우리의 늙음을, 인구 감소를, 대형 로봇 제작을 의뢰인 기관에서 나온 사람에게 맞춰야 하는 개발자들의 애환을 엿볼 수 있었다. 때로는 삶의 애환을, 때로는 즐거움과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작품을 읽어야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곽재식 작가의 위트와 유머 그리고 상상력을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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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4-07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런 많은 메시지!
이 책 담아갑니다~

Breeze 2022-04-07 13:1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