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을 읽고 리뷰 쓴다는 게 어쩐지 부끄럽다. 최승자 시인의 시를 읽고 그를 닮고 싶은 시인들의 감탄사를 읽으며 더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시인의 산문 속에서 드러나는 것들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기록 차원에서 남겨둔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기 바라는 바다.


 

최승자 시집은 쓸쓸해서 머나먼만 읽어보았다. 죽음과 쓸쓸함, 그 고독이 전해져 와 묵직한 여운을 남겼던 시집이었다. 오래전 1989년에 나온 산문집에 네 편의 산문을 더하여 32년 만에 증보판으로 산문집이다.


 


 

 

시가 인간에게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시가 시를 읽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시가 시를 쓰는, 시를 생산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시가 시를 쓰는, 시를 생산하는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인 내게 무엇이 될 수 있을까. (124페이지)

 


시를 직접 써보기 시작한 시인은 혹시 시인이 될 수 있을까 시험해 보기 위해 신문사와 잡지에 투고했었다. 예심에 오르지 못한 채 떨어져버리고, 몇 년간 회사를 다녔지만 재미가 없었다. 시인이 되고 싶어 친구가 타이핑해준 시를 봉투에 넣어 서랍 속에 잠재워둔 채 몇 달이 지났다. 게으름 때문에 부치지 못했던 봉투를 어느 날엔가 부쳤고 잡지에 게재되어 시인이 되었다.


 

내가 찾는 것, 내가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실은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내가 불안하게 기다리고 있는 그것, 아니 나의 불안 자체가 명확하게 활자화되고 공식화되어 신문기사로 나타나길 바랐던 것인가. (56페이지)

 


쓸쓸함과 고독 그리고 죽음은 어쩌면 비슷한 단어인지도 모르겠다. 쓸쓸함과 죽음의 화두를 안고 살아갔던 시인의 마음이 전해져오는 듯하다. 시인의 글 중에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점검하게 된다’(96페이지) 라는 문장이 있다. 들려오는 죽음 소식은 안타깝다. 전혀 교류가 없는 타인일지라도 그의 죽음에서 내 삶의 미래를 보게 된다. 어쩌면 미래의 우리 모습이기에, 다양한 모습으로 오지만 그 끝은 죽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1980년대가 문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그것을 어떻게 구체화시켰는지 알려달라는 편집자의 말에 시인은 그것을 가위눌림이라고 표현했다. 1980년대는 문학인에게 표현의 자유를 잃은 억압의 형태였다. 가위눌림의 공포를 에둘러 말하였다. 그 시절을 견뎌온 사람들만이 공감할 표현이리라.

 


시인은 오랫동안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 퇴원 후 약 먹는 걸 잊어버려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는 시인이기에 그가 쓴 글이 더욱 귀하게 여겨진다. 증보판 작가의 말도 병상에서 썼다 한다. 최근 트위터에서 작가의 글들이 간간이 보이기에 무탈없이 지내시는구나, 하고 여겼는데 말이다.

 


시인들의 시인, 최승자 시인을 사모하는 시인들의 문장은 커다란 울림을 준다. 최승자 시인의 시를 마치 먹이처럼 먹고 자란 시인들의 마음이 그대로 표현되었기에 감동이다. 그들만큼 시인의 시를 알지 못하여 시집들을 더 읽어야지 않겠나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시인이 말하였다. 젊은 날의 기록이 부끄럽고 치기 같다고. 그 모든 편린이 나 자신이니 수필집을 쓸 거면 더 먼저 써서 털어버릴 걸 하는. 지나간 시간의 기록들은 이처럼 하나의 문학이 되는 걸 다시 실감했다.


 

#한게으른시인의이야기 #최승자 #난다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북리뷰 #리뷰 #도서 #서평 #문학 #에세이 #에세이추천 #한국문학 #한국에세이 #시인에세이 #산문 #산문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