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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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를 만나게 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처음 읽었을 때의 매력이 다시 읽어도 여전한 작품이었다. 출간된 지 14년째, 여전히 스테디셀러인 작품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호쿠리쿠 지방 K시의 저택. 3대가 같은 날 생일이어서 잔치가 벌어진다. 저택의 아이들을 포함해 아이 여섯, 가족과 친척 등 어른 열한 명이 독살되었다. 편지 한 장과 함께 배달된 음료와 술을 마신 뒤였다. 음료를 배달한 남자가 유력한 용의자였으나 훗날 자살한다. 저택의 독살 살인사건에서 살아난 가정부를 제외하고 유일한 생존자가 손녀딸이었다. 살인범을 아는 유일한 사람일 거로 기대했으나 그 소녀는 앞을 보지 못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뒤, 누군가가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다양한 사람에게 건네는 다양한 답변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사건 만큼이나 다른 것을 보고 말하는 것 같다. 그 날의 사건을 쓴 작가와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 살아난 가정부, 그 장소에 있었던 형제, 살인범을 따랐던 동네 아이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그 날의 사건을 들려준다.

 


정말이지 사람은 이상하죠. 장소와 상대방에 따라서 자기를 내보이는 방식이 달라져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든지 그런 부분이 있거든요. (64페이지)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경찰에서 발표한 범인과 다르게 한 사람을 지목한다.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그들이 가리키는 것은 한 사람이다. 증거로 살인범을 잡는 경찰도 마찬가지다. 처음 사건 현장을 보고 병원에서 맞닥뜨렸을 때 앞에 있는 사람이 범인이라고 여겼다. 불가항력적인 요인과 관련되었을까.

 


사건이 일어난 때 경황이 없어 그랬겠지만 놓쳤던 부분이 훗날 생각나기도 하고,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숨긴 말들과 상황은 어느 시점에 드러나 심중을 드러낸다. 누군가는 악의를 품고, 누군가는 두려워서, 누군가는 무심했던 결과다.

 


그네를 타는 그 사람의 표정이 말이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는 거예요.

환한, 세상을 손에 넣은 것 같은 얼굴.

그런 표정은 다른 때의 히사코 아가씨한테서도, 다른 사람한테서도 본 적이 없어요. 그 얼굴을 봤을 때, 전 죄의식 같은 걸 느꼈어요. 어쩐지 인간이 보면 안 되는 걸 본 것 같았어요.

문득 발밑이 푹 꺼지는 것 같았어요.

한순간, 그 사람이 그네를 타면서 느끼는 세계를 본 것 같은 착각이 들었거든요. (134페이지)


 


 

 

온다 리쿠 작품의 특색이 초자연적인 내용을 다룬다는 점일 것이다. 사람을 앞에 두고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의 심연에 들어가 말을 건넨다는 점. 그림에서 드러난 기이함. 기이한 행적. 그 장소가 주는 꺼림칙함. 규명할 수 없는 모호함이 특징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했던 말이 계속 뇌리에 파고들어 떠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게 맞는지도 정확하지 않다. 소설의 모티프 또한 그렇다. 자주 등장하는 하얀 백일홍은 작품에서 주요한 단서다. 소녀가 하얀 백일홍을 보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찾아가는 일이 관건이다.

 


여러 사람의 인터뷰 내용은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퍼즐을 맞추듯 하나씩 꿰어 맞춰진다. 드러난 진실은 우리를 숨 막히게 한다. 파고들자면 폭력과 관계가 있다. 누군가를 물리적으로 해하는 폭력이 아닌 그 사람을 짓누르는 정신적 폭력 말이다. 이러한 폭력은 다른 이의 마음을 조종하여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향은 이처럼 피로 물든 판타지의 세계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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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1-12-23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첫 출간 당시 읽었고 올 장마 기간에 이작품이 유독히 생각나 다시 읽었는데, 여전히 좋더라구요.. 진심 공감합니다. 다른 알라디너분께도 썼지만, 2000년대의 일본작가들의 작품이 유독 좋네요. 요즘은 화제성의 작품 읽어도 그닥인 경우가 넘 많아서 예전 작품들 꺼내서 읽곤 합니다.

Breeze 2021-12-23 15:09   좋아요 0 | URL
다시 꺼내어 읽으시다니. 진정한 독서가이십니다. 책에 파묻혀 다시 읽고 싶은 책도 못읽고 있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