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역사적 사건을 소설로 아는 경우가 많다. 글 쓰는 작가들의 책임이 무거운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는 것. 소설 등 다른 형식으로 독자들이 읽게 하는 역할을 하는 이가 작가라고 본다. 작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한강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여 그걸 문학으로 풀어낸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이어 제주 4.3사건에 대하여 말하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가족애에 관한 이야기다. 4.3사건으로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이 찾는 그 무엇은 상실과 애도의 시간이기도 하다. 지키지 못했던 거에 대한 애달픔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안고 살아가면서 겨우 버틴다. 고통을 알기에 다른 이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 길에 서기도 한다.


 


 

 

소설에서 눈은 여러 감정의 매개체다. 눈 속에 파묻혀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하며 녹아 없어지는 눈은 우리의 생과 사를 보는 듯하다. 슬픔으로 가득한 시간은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다. 눈이 내려 쌓이고, 녹는 시간이 오래 걸리듯 우리의 마음도 비슷하다. 내리는 눈은 역사가 남긴 얼룩이다. 눈 속에 파묻혀 길을 잃고 교착상태에 빠진 것도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 (44~45페이지)

 


시간은 자꾸 과거로 돌아간다. 경하의 시선 속에서 진행되었던 꿈으로부터, 사진을 찍고 영상물을 만드는 인선에게로, 인선의 엄마가 애타게 찾았던 외삼촌의 생사와 기억으로 향한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직접 겪지 않아도 전염되어 나타난다. 엄마가 이모와 함께 가족의 시체를 확인하러 다녔던 그 광경은 인선이 직접 겪은 것처럼 나타나 그를 괴롭힌다. 그가 영상을 제작하여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이유와 같다. 눈물로 얼룩진 엄마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 했고, 알리고 싶었다.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 (87페이지)

 


전체적으로 슬픔이 내재해 있다. 인선의 가족을 고통으로 몰고 갔다. 일하다 전기톱에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고 서울의 병원에서 접합수술을 한 것도, 신경을 죽이지 않기 위해 3분에 한 번씩 바늘로 찔러주는 장면은 마치 내 손가락이 찔린 듯 아프고 아팠다. 인선의 엄마와 아버지의 가족이 죽임을 당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것을 보며 자라는 것 또한 슬픔을 넘어 격통에 가깝다.


 


 

 

제주4.3의 역사의 한 장소로 우리를 안내하는 것 외에 남은 자들의 고통이 크게 느껴졌다. 등신대를 세워 사람들에게 알리는 효과도 크지만 이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나타나는 것이 우리를 그 시간에 있게 한다. 내가 인선이었다면, 내가 정심이었다면 어땠을까. 제주4.3사건을 일깨워 준 작가를 통해 우리나라가 가진 역사와 아픔을 생각해 보게 된다.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 고통의 근원을 파헤치며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촛불 하나에 의지해 기억 속으로 향하는 장소는 작별의 시간을 거치는 것과 같다. 눈이 쌓인 곳에서 길을 잃고, 촛불이 꺼져가는 그곳에서 함께 걷는 길은 어둠뿐인 우리의 삶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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