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의 불편함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지음, 김지현(아밀)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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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의 아이가 그날 이후 코트를 벗지 못한다는 첫 문장에서부터 독자를 사로잡는다. 어떤 이유로 그러는지 선뜻 들어서지 못하겠다. 코트를 벗지 못하는 아이는 왜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인지 그 감정에 다가가는 일이 힘에 부쳤다.

 


열 살의 야스는 스케이트 대회에 나가는 맛히스 오빠가 호수 너무 강 건너편으로 갈 때 따라가고 싶었다. 더 크면 데려가 주겠다는 말로 타이르는 오빠가 미웠다. 크리스마스 음식으로 다른 집에서는 오리나 꿩, 칠면조로 음식을 만들지만 자기가 이름을 지어준 토끼를 먹겠다고 하자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토끼를 데려가지 말라고 말이다.

 


야스에게 손 인사를 하며 나간 맛히스 오빠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고작 열 살의 아이지만 오빠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그 날 입었던 코트를 벗지 않는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한결같다. 야스에게 코트는 자신을 감추는 것이었으며, 죽음과 고통을 이해하고, 자기만의 속죄의 의식이었다.


 


 

 

자식을 잃은 엄마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았으며 엄마와 아빠는 그날 이후 짝짓기를 하지 않는 듯하다. 최소한의 키스도 하지 않는 부모를 보며 두꺼비가 짝짓기에 성공하면 부모의 짝짓기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맛히스 오빠가 살아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성적으로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감출 수밖에 없는 그들이었다.

 


개혁교회를 다니는 가족은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행하였다. 모든 것을 성경대로 하였으나 오빠가 죽자 모든 재앙의 첫 번째로 여기고 불안해한다. 마을에 구제역이 돌아 젖소들을 살처분하게 되며 이 가족은 점점 각자의 고통 속에 빠진다.

 


내 시선을 거꾸로 돌려서, 그러니까 쌍안경의 커다란 쪽 렌즈를 들여다봄으로써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져가는 것을 가까이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66페이지)

 


야스는 오빠가 죽은 뒤로 코트를 벗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변을 보지 못한다. 그 또한 죄의식의 한 행동인 것 같다. 야스에게 코트는 일종의 보호막이었다. 자기의 죄를 가려줄 보호막이자 안전고리였다. 보호막을 벗는 순간 자기의 존재가 사라질지도 몰랐다. 소중한 것들을 보관하고 그 감정을 감싸둔 장소로 여겼다. 아무도 가져가지 못하게, 혼자만 간직할 수 있게. 죽음의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야스에게는 죽음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을 자신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가. 슬픔과 고통에 눈이 멀어 다른 아이가 자라는지 모르게 되고, 그 고통을 즐길지도 모른다. 죽은 아들의 부모뿐만 아니라 형제들도 그렇게 느낀다는 게 문제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겪을만한 모든 일과 감정들이 들어 있었다. 가족을 잃어도 사춘기 아이들은 자랄 것이며 성적인 충동도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그럼에도 애써 감추려하는 것은 죽은 사람을 생각한다는 거였다. 행복하지 않으려 했고, 고통 속에 침잠해야 용서를 구하는 일이라 여겼다. 다만 그 슬픔이, 고통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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