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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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혼을 집어넣은 건축물은 건축가의 마음이 담겨 있는 법이다. 건축설계에서부터 살고 싶은 집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 마음이 투영된 건물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집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는 문이다. 안과 밖을 경계하는 것 중의 하나가 문이고 손잡이다. 건축을 이루는 자재 중 문과 문손잡이에서도 그 마음이 드러난다. 안과 밖의 경계에서 들어갈 수 있는 것과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있다. 집 안과 집 밖의 건축 자재가 다른 이유와도 같다.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들어오지 않는 것, 들어오지 못하는 것을 등 뒤에 남기고 자기만 안에 들어간다는 얘기니까. (336페이지)


 


 

 

대학을 졸업한 사카니시 도오루는 존경하는 무라이 슌스케의 설계사무소에 편지를 썼다. 졸업작품으로 만들었던 휠체어 생활이 가능한 소형주택 플랜을 동봉하였고, 몇 년 동안 신입사원을 뽑지 않던 사무소에 입사하게 되었다. 매년 여름이면 기타아오야마의 사무소는 반쯤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가고 아오쿠리 마을에 있는 여름 별장으로 이동한다.


 

무라이 설계사무소가 신입사원을 뽑은 건 국립현대도서관건립을 앞두고 설계 경합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슌스케를 비롯해 여름 별장으로 옮긴 직원들은 그동안 추진해왔던 업무를 진행함과 동시에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작업도 함께 시작한다. 여름 별장의 분위기는 물 흐르듯 고요하다. 어수선하지 않다. 고요한 숲속에서 각자의 맡은 일을 묵묵히 할 뿐이다.


 

건축물을 설계할 때 건축물을 이루는 전체적인 아우트라인을 잡고 세세한 것들은 나중에 하는 게 아니라 의자나 책장의 재질 및 모양을 동시에 작업하고 있다. 작업 진행 상황을 직원들과 공유하고, 이용하는 사람에게 불편함이 없어야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들과 경합을 벌이는 후나야마가 도서관 관계자의 시점에서 공간을 구획한다면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이용자들의 동선에 맞게 설계한다는 점이 달랐다. 즉 그것을 누구에게 맞추느냐에 따라 건축물이 달라진다는 것을 표현하는 장면이었다.

 


집을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설계할 때 불이 잘 나지 않을 집, 지진에 무너지지 않을 집, 그런 것에 가능한 한 신경쓰지. 그것이 건축가에게는 중요하거든. 그렇지만 말이야, 만일에 도쿄 전체가 전부 불타버리는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내 집만 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건 좀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아. (202페이지)

 


사카니시는 30년 전의 슌스케를 추억한다. 여름 별장이 있던 아오쿠리 마을. 새벽에 눈을 떠 선생님이 나가시던 모습을 떠올리고, 식사를 준비하여 직원들과 나눠 먹었던 것. 새들의 소리로 이름을 알아맞히고 숲속의 소리에 귀 기울였던 시간이었다. 스물세 살의 사카니시가 세 살 연상의 마리코를 좋아하면서도 유키코와는 편한 관계를 이어오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작가 노미야 하루에를 만나고 돌아오는 어두운 밤길에 보았던 반딧불이의 초록빛 항연은 숲속의 아름다움이 제대로 표현되었다.

 


 

 

건축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건축물은 자신의 이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몇 달에 걸쳐 실측하고 설계도를 그렸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건축설계를 한다는 것은 분명 자부심이 있을 테니 말이다.


 

건축물에 대한 애정. 건축을 배우는 사람의 자세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건축가의 마인드를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한적한 여름 별장의 풍경이 그려지고, 그 공간에서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의 회상에서 가슴 가득히 스며드는 감정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읽은 작품은 더 아름답다.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다워서 자꾸 눈물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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