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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투스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9월
평점 :
삶은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로 나아가기도 한다.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어느 순간 생각지 못한 장소에 서 있기도 한다. 성공회 주교의 딸인 세리나 프룸이 그러하다. 문학을 좋아하였으나 어머니의 바람대로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게 되었던 것부터 그녀의 삶은 자기가 원하던 것에서 한 발짝 멀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삶을 살아야 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하는 건 당연하다.
소설은 세리나 프룸의 회상 형식으로 된 내용이다. 그녀는 MI5에 사무직 보조요원으로 들어갔다가 ‘스위트 투스’ 작전에 투입하게 된다. 스위트 투스는 단 것을 좋아하는 취향이라는 뜻으로 냉전 체제에 작가들에게 재정적 도움을 주어 자유세계를 옹호해줄 작가들을 찾아 지원하는 작전이었다. 세리나는 그 작가에게 접촉해 그들의 바람대로 작품을 쓸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역할이었다. 세리나는 톰 베일리의 단편을 읽고는 그의 작품의 탁월함을 발견하여 그를 선정하게 된다.
이언 매큐언은 1967년에 CIA의 자금으로 운영되었던 영국 잡지 <인카운터>의 사건을 풍자해 스파이 소설을 썼다. 스파이 소설임에도 문학이 가진 역할에 대하여 끊임없이 토론하는 세리나와 톰 때문에 문학적인 면이 강조되었을 뿐 아니라 로맨스 소설로도 읽혀졌다. 우리가 보았던 스파이 영화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마치 클리셰처럼 뗄 수 없는 다른 하나의 주제다. 소설가 톰 베일리를 포섭하는 작전을 맡았던 세리나는 매우 예쁜 여성이다. 즉 누구라도 한눈에 반할 수 있는 여성이다. 그를 도와 장편소설을 쓸 수 있게 옆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 점점 사랑에 빠지는 건 당연한 결과라는 점이다.
세리나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톰에게 접근했다. 톰을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를 밝혀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데 어쩌면 결과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그를 사랑하는 것만큼 진실을 밝히고 싶지만 쉽지 않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MI5에 사표를 썼다면 어땠을까. 그때는 이해를 해주었을까.
케임브리지에서 수학 3등급이었던 그녀가 MI5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교수였던 토니 캐닝 때문이었다. 문학을 사랑하였던 것과는 별개로 토니 캐닝은 다양한 질문으로 세리나의 문학적 깊이를 다지게 했다. 신문의 사설과 역사를 공부하게 하여 독서지도를 해주었다. 이른바 MI5 입사에 필요한 면접 준비를 해준 셈이었다.
소설을 읽으며 이해되지 않는 인물이 맥스였다. 세리나와 모종의 감정을 나누었다지만 맥스가 한 행동은 프로답지 못했다. 비밀 요원은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되었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는 명문화되지 않은 계약이 존재하며 작가는 그걸 존중해야 한다. 가상의 세계나 그 안에 존재하는 인물들의 어떤 요소도 작가의 변덕에 따라 사라지는 것이 허용되어선 안 된다. 허구의 세계도 실제 세계처럼 견고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계약이다. (322페이지)
이 소설이 가진 가치는 아마 반전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소설 속에서 세리나가 톰 베일리를 두고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데 진실을 밝히기란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정체가 발각되었을 때 일어날 일들을 예상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것들을 뛰어 넘는 결말이었다. 소설가인 톰 베일리와 문학을 좋아하는 세리나 프룸 때문에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소설 속에서 토론의 주제로 거론된다. 이것 때문에 다소 작가가 의도하는 것에 다가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결말을 위해 그러한 감정들을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랄까. 모든 것을 뛰어넘는 내용 때문에 소설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하나 싶었다.
그래서 느꼈던 게 소설을 읽으며 어쩐지 여성적인 문체라는 것이었다. 물론 세리나의 회상 형식으로 진행되는 소설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여겼다. 하지만 이언 매큐언의 소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여성적인 느낌이 강했다. 나는 번역 때문인가 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야 이언 매큐언이 의도한 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의 고민과 소설을 읽는 독자의 역할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세리나처럼 나도 소설을 읽고 또 읽는 사람이라 독서를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스파이 영화를 보는 듯도 했다. 왜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사랑하는지 그 깊은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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