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합본 특별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워킹 데드>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좀비가 나타나 미국의 전역을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가는 인간들을 나타내고 있다. 신랑이 퇴근하고 오면 TV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보고 있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굉장히 오랫동안 보고 있는 거다. 도대체 무슨 드라마를 보길래 그렇게 깊이 빠져있는지 궁금해 책을 읽다 말고 몇 편을 함께 보았다. 좀비물로 무척 유명한 드라마라고 했다. 시즌 1부터 시작해서 현재 시즌 10까지 나와있는 드라마로 신랑은 현재 시즌 8을 보고 있는 중이다. 인간이 좀비로 변하고 있는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 드라마였다. 인종 문제, 성 문제, 공동체 생활에 대하여 온갖 문제를 거론한다. 우리의 미래를 나타내기 위해 아이를 태어나게 하여 인간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고 있었다.  

 

<워킹 데드>를 보면 좀비가 판치고 있는 세상에서 자신의 자아를 찾기란 버거운 일이다. 그럼에도 함께 머물던 사람들과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인간의 삶이 어떤 것인지, 세계의 끝은 과연 있는지,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출간 35주년 기념판을 읽으며 어쩐지 <워킹 데드>의 장면들과 비교하게 되었다. <워킹 데드>의 인간들은 모두 이름이 있는 반면에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인물들은 모두 이름이 없다. '나' 아니면 '노인', '도서관 여자', '통통한 소녀', '문지기', '꿈 읽기', '대령' 등이다. 부재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한 과정에서 모두 무명의 이름으로 존재할 뿐이다.

 

 

소설은 두 개의 제목으로 출발한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는 세 가지의 단어로 시작하고, 세계의 끝에서는 하나의 단어로 진행된다. 각각의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로 합해지는데,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언제 맞닿을지 몹시 기대하게 된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나'는 국가의 공권력 기관인 곳에서 계산사로 일하고 있다. 생리학자인 노인의 호출을 받고 연구실로 갔다가 셔플링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보수도 넉넉하여 그리스어를 배우고 외국에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을 한 '나'는 노인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그후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노인이 주었던 일각수 두개골과 자신의 상관관계를 알지 못했다. 그 상황에서 기호사의 일원으로 보이는 꼬마와 덩치가 나타나 그의 집을 폐허로 만든다.

 

세계의 끝의 '나'는 자신의 그림자와 함께 그곳에 도착했다. 짐승들과 그림자들을 지키는 문지기는 그에게 도서관에 가서 일각수의 두개골로 오래된 꿈을 읽으라고 한다. 문지기는 '나'에게서 그림자를 떼어 놓으며 서로 다른 곳에서 지내라고 한다. 그림자가 없어진 '나'는 자꾸 기억들을 잃는다. 그림자는 자기의 마음을 가리켰다. 해가 비칠 때 우리에게 달라붙은 그림자는 길게 늘어진다. 여기에서 그림자는 우리들의 마음을 가리키고,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우리의 상념이 깊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는 보호사들이 지하에 사는 야미쿠로와 짜고 노인의 연구소를 헤집었다. 노인은 사라지고  통통한 손녀와 함께 지하의 세계로 노인을 찾으러 간다. 야미쿠로가 있는 지하의 세계를 건너 노인이 자신과 연관된 연구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박사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있어 이 세계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것이었다.

 

세계의 끝은 완전한 곳이다. 싸움도, 고통도 없다. 필요한 것, 알아야 할 것이 다 있어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곳이다. 세계의 끝에는 짐승으로 분류되는 일각수들이 살고, 눈이 많이 오는 겨울이 되면 짐승들은 죽어 나간다. 누구 하나 슬픔을 느끼지도 않고 문지기는 짐승이 죽으면 머리를 잘라 두개골을 도서관에 보관할 뿐이다. 그러니까 세계의 끝에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마음'이다.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도 없고 그 마음을 알지도 못한다. 이런 세상이 우리의 이상향이 될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영원한 삶을 사는 불사의 삶을 바라지만, 희노애락이 있고 언젠가는 죽고마는 세상에 마음 붙이고 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만 같다.

 

  

세계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나'와 자신의 그림자를 찾아 바깥 세상으로 나가려는 '나'가 바라보는 세상은 허무의 세계와도 닮았다. 바깥 세상으로 나가자는 그림자에게 주려고 마을의 지도를 그렸음에도 그가 선택한 것과 세계의 끝을 향해 나아가는 '나'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세계가 어떤 것이어도 자신이 머무는 곳을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반면 너무 쉽게 버리기도 하는 것 같다. 삶에 커다란 의미를 두지 않고 살기 때문일까.

 

두 가지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합해졌다. 원더랜드를 향한 세계의 끝에서 마주하는 우리의 민낯을 보는 것만 같았다. 미래는 대부분 우울하게 그려진다. 지금 코로나-19의 상황도 미덥지 못하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차있다. 어떠한 세계는 좀비로 가득차 집밖에 나갈 수도 없고 집안도 안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자신의 마음을 버리고 사는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남은 오늘을 평범하게 장식하려는 '나'에게서 오늘의 우리를 본다.

 

 

 

#세계의끝과하드보일드원더랜드  #무라카미하루키  #민음사  #하루키월드  #책  #책추천  #소설  #소설추천  #하루키소설  #하루키소설추천  #하루키  #책리뷰  #일본문학  #세계의끝  #하드보일드원더랜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