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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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한 편애가 심해 좋아하는 작가 위주로 책을 읽는다. 아무래도 모르는 작가보다는 내가 읽어왔던 작가의 작품에 먼저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독자들에게, 혹은 작가들에게 호평을 받는 작가의 작품이라면 호기심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장류진이라는 작가를 여러 작가들과 함께 엮은 『새벽의 방문자들』이라는 소설로 먼저 만났고, 작가의 소설집으로 읽어보고 싶어졌다. 작가의 느낌이 좋았다. 글도 매끄럽고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주 깔끔하게 표현해 낸 소설로 작품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평론가들이 좋다고 말하는 젊은이들의 어두운 내면을 다루는 소설과는 달랐다. 직장인으로서 많은 부분 공감하며 젊은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시선은 한마디로 신선했다.

 

구입한지 몇 달이 지난 뒤에야 읽게 되었다. 독자들이 왜 장류진의 책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여덟 편의 작품 중 읽은 한 편을 제외하고 일곱 편의 작품은 그야말로 보석이었다. 주인공의 직업에 따라, 나이에 따라 혹은 성별에 따라 보여지는 우리의 내면을 그대로 들여다 본 느낌이랄까. 순간적으로 터져나오는 웃음과 나라면 하지 못했을 행동들을 보며 통쾌해졌다.

 

 

 

결혼식을 3일 앞두고 만난 회사의 동기 빛나 언니와는 개인적으로 연락 한지가 3년 쯤은 된 사이다. 즉 결혼식을 왕래할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 얘기다. 청첩장을 달라며 점심을 함께하자고 해서 만났던 빛나 언니는 역시나 결혼식에 오지도 않았고 자신의 청첩장을 키보드 밑에 넣어두었다. '나'는 빛나 언니와 자신과의 관계를 말하기 위해 청첩장을 줄 때 사주었던 우동 값과 축의금 대신 먹었던 밥 값을 제하고 남은 금액의 선물을 준비했다. 즉 빛나 언니와 자신과의 관계는 기본적인 축의금 5만원 선이었던 것. 빛나 같은 사람이 꽤 있다. 금전적인 면에서 계산이 흐린 사람. 그런 경우 손해보는 셈치고 5만원 정도의 축의금을 할 터인데 소설 속 주인공은 계산이 정확하다. 이런 마인드가 통쾌했다.  「잘 살겠습니다」의 주인공처럼 사는 법을 배워야하지 않을까.

 

직장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괜찮은 스펙을 가지고 있어도 원하는 직장에 취직하기는 어려운 법. 더군다나 학자금 대출까지 갖고 있으면 어학연수는 꿈도 꾸지 못한다.  「탐페레 공항」에서는 다큐멘터리 피디가 꿈인 여성이 주인공이다. 다큐멘터리 피디가 되고 싶은 주인공은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다. 저렴한 항공기 편을 찾다보니 핀란드를 경유해 더블린으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핀란드에 도착후 5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노인이 있었다. 그와 짧은 산책을 마친후 더블린에서 3개월 간의 워킹 홀리데이를 마쳤다.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그때 찍어주었던 사진을 짧은 편지와 함께 보내주었다. 그에게 답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미루다가 잊고 있었다. 4대보험이 되는 직장에 들어간 후 피디를 구하는 구인광고를 보고 서류를 작성하면서 탐페레 공항에서 만난 노인을 떠올렸다. 삶이란 그렇다. 어떤 순간마다 공항에서 만난 노인을 떠올렸지만 대부분의 경우 삶에 치여 잊곤 한다. 그리고 문득 어느 순간에 떠올리고 그 시절에 느꼈던 어떤 간절함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1집 음반을 낸 뮤지션이지만 특별한 히트곡이 없는 주인공 장우는 어느날 고장나기 직전의 냉장고를 바라보다가 냉장고 송을 만든다. 유튜브에 올려 조회수가 계속 올라가 덩달아 기분좋아지는 주인공과 음원을 내자는 음반기획자의 권유에 고민하는 이야기  「다소 낮음」. 남편과 사별후 후쿠오카에 사는 지유에게 연락을 했다가 갑자기 후쿠오카행 비행기표를 끊고 일본으로 날아간 지훈의 이야기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는   「다소 낮음」과 함께 남자가 화자인 소설이다. 인디 음악가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의 어려움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살펴볼 수 있었고,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에서의 지훈은 말 잘 통하는 지유와 핑크빛 기류를 기대하고 일본으로 향했으나 자신이 원했던 것처럼 되지 않자 비로소 그의 본성이 나오는 작품이었다. 말이 잘 통하는 것과 이성 간의 관계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은 여자와 남자의 다른 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은 아르바이트와 인턴 생활을 전전하다 정규직 첫 출근을 앞둔 사회 초년생의 첫 출근길을 다루고 있다. 연봉 2,600여 만원에서 사용 금액들을 계산하고 블라우스를 입고 걷다가 겨땀이 나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말까 고민한다.   「도움의 손길」에서는 28평의 첫 집을 마련하고 원하는 대로 리모델링후 집을 청소 도우미에게 도움을 손길을 받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사람이란 어쩔 수 없는 건가 싶다. 처음에는 집 전체를 깔끔하게 청소하다가 눈에 보이는 곳만 반들거리게 청소하는 도우미 아주머니와 그것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들을 담고 있다.

 

표제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스타트업 회사에 다니는 안나는 회사의 막내다. 스마트폰의 위치 기반으로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앱을 만드는 회사의 직원이다. 거의 새 제품을 백 개씩 계속 업로드하는 거북이알이라는 사용자를 만나게 된다. 거북이알은 카드회사의 직원으로 오래도록 공들여왔던 뮤지션의 콘서트를 진행하고 승진을 보장받지만 사장의 인스타그램에 먼저 업로드하기 전에 게시판에 공고했다며 월급을 현금 대신 카드 포인트로 받게 된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포인트를 현금화 하는 노하우를 말해주는데 재미있었다. 말 한마디 또는 글 하나를 잘못 올려 제재를 가하는 대표의 행동은 어느 회사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장류진의 소설이 출판사 서버를 다운시킬 정도로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다고 한다. 읽어보니 알겠다. 왜 그토록 장류진의 소설을 좋아했는지. 동류의식에서 우러나오는 연대감 혹은 동질감이었던 거다. 자신이 하지 못했던 행동에 대한 쾌감과 자신과 너무 비슷한 경험때문이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어서 읽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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