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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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인문서적의 경우 책의 처음 부분에, 소설인 경우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려있는 작가의 말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을 쓰기전과 쓰면서 느꼈던 것들의 소회가 들어서이다. 내가 읽었던 느낌과 비교해보는 시간이기도 한데, 마치 작가의 육성을 듣는 듯하다.

 

읽었던 책에 대한 반가움. 읽지 않은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소설가의 이야기는 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기 때문이다. 소설, 동화, 산문에 수록된 모든 책들의 서문, 발문을 모은 이 책에서 작가가 책을 쓸 때의 느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은 출판사에 대한 애틋함, 그리고 의리를 말하는 작가의 문장에서 여린 마음을 느끼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좋은 건 서문과 발문이 실려 있는 책의 표지가 우표처럼 첫장에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보기 힘든 출판사의 글이라던가, 다소 촌스러운 표지까지 감상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시대가 달라져 디자인 면이 상당히 중요하다. 별도의 북 디자이너가 있고, 책과 어울리는 좋은 표지를 얻기 위해 복수의 표지가 나타나기도 한다.

 

6년 전의 나의 데뷔작이 열화당의 호의로 예쁜 책으로 꾸며져 다시 선보이게 되니 기쁘기도 하고 약간은 겸연찍기도 하다. 다시 한번 읽어보니 표현의 과장이나 치졸이 자주 눈에 거슬리나, 그런대로 그것을 썼을 당시의 젊고 순수한 마음이 소중해서 고치지 않았다. (19페이지, 『나목』 발문 후기 중에서)

 

 

박완서 작가는 『나목』을 사십 세에 썼다 한다.  열화당에서 재출간했던 때가 1976년이고, 중앙일보사를 거쳐 1990년 작가정신에서도 재출간했다. 1985년판 발문에서 쓰인 말은 '글이 도무지 안 써져서 절망스러운 때라든가 글 쓰는 일에 넌더리가 날 때  『나목』을 펴보는 버릇이 있다.' 라고 했다. 이는 초심을 잊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던가. 글을 쓰고 싶었던 때를 생각해보면 저절로 글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나목』을 읽지 않아 잘 몰랐는데 박수근 화백을 모티프로 해서 쓴 작품인 것 같았다. 박수근 화백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왜 그걸 알지 못했을까.

 

작가정신하고의 해묵은 약속에서 비롯된 일이긴 하지만 약속 이행이라는 사무적인 생각보다는 생각보다는 이 어려운 때를 버틸 수 있는 힘을 서로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많이 움직여 이 책을 엮게 되었는데 세월이 하도 뒤숭숭하다 보니 내가 아끼는 작고 착한 출판사한테 도리어 폐나 끼치게 되면 어쩌나 걱정스럽다. (129페이지,  『어른 노릇 사람 노릇』 중에서)

 

비슷한 문장을 몇 개 더 발견했다. 작가가 출판사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출판사 걱정을 하는 작가의 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수더분한 얼굴에 미소를 띤 작가의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 (164페이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중에서)

 

이 책을 간추리고 엮으면서 느꼈을 박완서 작가의 딸이나 편집자 모두 울컥했을 것 같다. 서문이나 발문이 이처럼 하나의 책으로 엮여졌다는 사실도 새롭다. 작가로 처음 데뷔했을 때부터 영면에 들기 전까지의 흔적들이 보여 작가의 글을 더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작가 연보와 작품 연보, 작품 화보까지 수록되어 작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보면 더욱 좋을 책이다. 제목 그대로 작가의 모든 책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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