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퍼슨
크리스틴 루페니언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가족, 친구 혹은 연인 간의 관계는 다르다. 남녀간의 관계에서는 처음 만났을때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잘 생겼는지, 성격은 괜찮은지, 연인한테 잘해줄 것인지에 대한 탐색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성적인 끌림이 아닐까. 만지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더 깊은 관계로까지 발전하고 싶은 감정을 갖게 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약간의 호감은 있지만 연인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시간은 두 사람의 감정의 깊이에 따라 다르다.

 

소설집의 표제작인 「캣퍼슨」은 처음 만난 사람과 데이트하며 겪게 되는 일들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술 영화 전용극장 매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마고는 영화를 보러 온 로버트를 만나 소위 썸을 타게 된다. 특별히 좋지도 않았지만 싫지도 않아 둘은 데이트를 하게 되는데 그후에 발생되는 감정은 우리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휴가를 맞이해 대학을 떠나 집에 갔던 마고는 로버트와 함께 문자 메시지로 많은 대화를 하게 된다. 데이트를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좋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났을 때의 감정은 마고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감정을 갖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함께 영화를 보고 그의 집으로 함께 간다는 것은 더 깊은 관계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로버트도 알고 있는 사실이고 마고도 아는 사실이다. 더불어 책을 읽는 우리까지 알 수 있다. 중간에 마음이 바뀌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입밖에 내지 못한다는 것. 그런 마음을 조금쯤은 공감할 수 있었다. 첫 데이트에서 좋아하는 것처럼 말했다가 거절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로버트의 차를 타고 그의 집(낯선 장소)으로 가는 과정에서 혹시 자기를 강간하고 죽이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 또한. 아직 로버트를 자세히 알지 못하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사랑의 감정과 자주 혼동하는 것이 호기심 혹은 약간의 끌림이 아닐까 한다. 한 번의 관계를 가진 뒤 그에게 상처를 줄까 봐 헤어지자는 말을 못하는 것 또한 지켜보는 이를 답답하게 했다. 그에게 연락하는 것을 피하며 자꾸 몽롱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실재하는 로버트보다 휴가기간때 주고 받은 메시지였다는 것. 어느 정도는 괜찮은 남자지만 다시 데이트를 하고 싶지는 않은 남자였다는 게 문제랄까.

 

현대판 나르시스트 라고 할 수 있는 「거울, 양동이, 오래된 넓적다리뼈」는 생각하지 못했던 작품이었다. 구혼자들을 자꾸 퇴짜놓는 공주가 깨진 거울 속 자기 모습에 반해 그 남자를 찾아 결혼하겠다고 했고, 그 남자가 사실은 거울에 비춰지는 자기였다는 것이 아니러니다.  「풀장의 소년」 은 테일러의 처녀 파티를 앞두고 오랜 친구인 캐스와 리지는 뭔가 자극적인 것을 선물해주고 싶어 오래전에 보았던 공포 영화 속 소년을 찾기 시작하는 이야기다.

 

 「성냥갑 증후군」은 오랜 연인인 로라와 데이비드를 보여준다. 좋은 직업과 높은 급여를 받는 데이비드에 비해 아직 직장을 갖지 못한 로라. 로라는 무언가에 물렸다며 긁기 시작하고 자신의 피부를 벗길 정도로 긁어댄다. 어느 날은 피부 속에서 움직이는 벌레를 잡았다며 점처럼 보이는 것을 비닐 봉투에 넣는다. 이를 본 의사는 로라에게 성냥갑 증후군이라는 병명을 준다. 경제생활을 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지출의 82퍼센트를 사용하는 데이비드에 비해 겨우 18퍼센트의 지출을 할 뿐인 로라의 부담감이 만들어 낸 증후군이 아니었을까 싶다.

 

 

 「캣퍼슨」의 대척점에 있는 단편이라 할 수 있는  「좋은남자」라는 작품이 놀라웠다. 테드는 여자들과 깊게 사귀지 않는다. 몇 번을 만난 후에는 이별 통보를 하는데 최근 만났던 여성이 던진 물이 든 컵에 맞아 병원에 실려가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십대시절 애나를 좋아했지만 남자로 다가가지는 못하고 친구에 머문다. 우정이라는 영역 안에 숨어 있어야 애나 곁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애나를 좋아하는 동시에 그를 좋아하는 레이철과 만나게 되었다. 레이철을 좋아지기 시작 했지만 좋아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레이철과 헤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애나와 사귀게 되었지만 중간에 다른 여자를 만나 바람을 피웠고 레이철과도 바람을 피웠다.

 

그들이 생각하는 '좋은 남자'란 그 남자에 비해 자신이 너무 좋은 여자라고 마음속으로 은밀히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남자다. 그는 그녀들이 스스로에 대해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을 그녀들 눈에서 확인한다. (271~272페이지,  「좋은남자」)

 

테드는 스스로 좋은 남자라 여겼다. 여자 입장에서 보면 테드가 좋은 남자라 할 수도 있다. 애나처럼 자신에게 향하는 감정은 모른척하고 자신이 얻을 수 있을 때만 가까이 다가오는. 이런 여자가 실제로 있을 것도 같다. 여자 입장에서 이런 친구를 바라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를 챙겨주고 다정하게 대해주는데 친구인 관계를 원하기 마련이다.   

 

총 11편의 소설로 다양한 관계에서 드러나는 감정들을 담았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관계들, 사회적 혹은 개인적 욕망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했다. 작가의 단편  「캣퍼슨」이 뉴요커에 발표되어 온라인에서도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미투 운동과 열띤 논쟁을 일으켰던 작품이라고 했다. 그외 작품들을 엮은 소설집이다.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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