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내가 죽은 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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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나이가 들어 조금씩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많아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렸을적 기억들을 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나에겐 선명하게 기억하는 장면들이 몇 있다. 너댓 살의 기억으로 동생이 태어나던 장면은 마치 그림처럼 선명하다. 증조 할머니와 함께 창호지 문밖을 내다보았던 일, 스님이시던 친척 분이 집에 방문하셨을 때 온 방을 갈고 다니던 내 잠버릇 때문에 잡아가겠다고 하셔서 놀라 반듯하게 누워 자던 장면 등. 누군가의 말로 기억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이 소설을 정확하게 10년쯤 읽었다. 오래전에 간단하게 썼던 리뷰를 발견하고는 다시 기억날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읽으며 이어질 내용을 기억할 수 없었다. 한참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들에 빠져 있었을 때의 독서였다.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학대에 대한 생각은 확고하게 가졌었던 것 같다. 그때 쓴 리뷰에서도 학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던 걸 알 수 있었다. 폭력은 대물림된다는 크나큰 주제였다. 더불어 히가시노 게이고식 퍼즐 찾기에 예전에 읽었던 책임에도 처음 읽는 것처럼 빠져 읽었다.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7년 전에 헤어졌던 사야카 라는 여성의 전화였다.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사야카는 어릴적 기억을 찾는데 도움이 되어 달라고 했다. 사야카의 아버지가 남긴 유품 속에서 낡은 지도와 열쇠를 가지고 그곳에 찾아갔다. 현관 쪽 보다는 지하실에서 입구를 발견하고 들어간 곳은 전기와 수도를 쓸 수 없는 버려진 집이었다. 누군가에게 기념이 된 듯한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사야카는 유년 시절의 기억이 없었다. 어떠한 일이 있었기에 그녀는 기억을 전혀 하지 못했던 걸까. 아버지가 남긴 열쇠에서 자신의 기억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집은 모든 것이 멈춰 있었다. 2월 11일 11시 10분에. 미쿠리야 유스케를 기리는 글들과 유스케가 썼던 일기장에서 그 집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들을 찾으려 애쓴다. 초등학교 6학년때 죽음을 맞았던 유스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야카의 아버지는 왜 이 집에 다녀갔던 걸까. 수수께끼를 찾듯 하나씩 드러난 진실과 '나'가 사야캬에서 감췄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그 집의 물건들에서 사야카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분명히 이 집에 왔었던 것 같은 기억들이었다. 사야카는 누구인지, 유스케와는 어떤 사이였는지 독자들 또한 긴장하며 읽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기, 주인공은 알고 있지만 독자는 모르는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감춰졌던 진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제목이 섬찟하다. 소설의 내용이 어느 정도 유추가능하기도 하고 어떤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하다. 작가는 크레타 문명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크노소스 궁전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짜릿함과 두려움을 선사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들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작가의 특기 답게 이번 작품 또한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감정이 어디까지 가는지 볼 수 있게 한다. 친부모와 양부모의 관계에서 받는 상처를 드러냈고 또한 자식을 사랑하면서도 잘못된 방법으로 학대를 했던 부모를 냉정하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사랑한다는 미명하에 아이들에게 학대를 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했다.

 

초기작이어서 현재에 나오는 작품들보다 다소 인기는 없을지 모르나 꽤 생각에 잠기게 하는 주제를 가졌다. 그토록 많은 작품을 펴내면서도 사회적으로 문제시 되는 주제를 드러낸다. 10년 만에 다시 읽었지만 마치 처음 읽는 소설처럼 긴장하며 읽었다. 다시 읽어도 역시 좋은 작품. 새로운 번역으로 더욱 젊어진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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