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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변화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평점 :
십 년 전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한 권을 읽고 반해 그의 작품을 다 찾아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읽었던 소설이 『변신』이라는 소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에 비채에서 나온 책을 읽는데 느낌이 아무래도 비슷해 오래전 리뷰를 찾았더니 『변신』이라는 제목의 소설이었고, 이 소설은 개정판에 해당된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찾아보니 느낌이 새롭다.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상세한 줄거리는 잊는 법. 책에 대한 약간의 느낌만 남아있는 상태에서 읽은 소설은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탄성을 지르게 했다. 물론 초기작이라 최근에 쓴 작품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그의 본래 소설을 맛을 느끼게 하는 건 변함이 없다.
사고로 머리에 총을 맞아 뇌를 관통당한 환자가 있다. 부동산소개소에 들어왔던 살인범에게 총을 맞을 뻔한 어린 소녀를 구하려가 그렇게 되었다면 국민들은 그가 살아주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한 대학교의 뇌과학 연구팀은 그를 살리기로 결정했고, 심장사한 사람의 뇌를 그에게 이식시켰다. 대학교의 연구팀은 전 세계의 최초로 뇌이식 수술을 성공시켰다. 깨어난 그의 이름은 나루세 준이치. 말이 없고 온순하며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다. 회사에서도 그에 대한 평을 그렇게 말했고, 그와 사귀던 메구미도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수술후 그가 달라진 것 같다. 그에게 뇌이식 수술을 주도한 도겐 교수팀은 그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기록하기에 바쁘다. 세계적으로 이목을 받았고, 그에 대한 수술은 실패가 없어야 했다. 깨어난 준이치는 자신에게 뇌를 제공한 사람을 궁금해했고, 도겐 교수가 말한 도너는 세키야 도키오라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의 집을 찾아가 아버지를 만나 이야기해보지만 자신과 전혀 접점이 없는 것 같다. 장기를 이식받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친근감 혹은 애틋함 같은 게 전혀 생기지 않았던 거다.
오래전 심장을 이식한 환자의 이야기를 말한 소설이 있었다. 그 소설에서 나타난 것도 심장을 이식해 준 사람의 가족을 만났을때 저절로 흐르는 눈물과 애정을 갈구하는 듯한 감정을 느꼈었다. 또한 최근에 방영한 한 드라마에서도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이 공여자의 어머니를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 그리고 죽은 공여자가 당한 사고 현장이 꿈으로 나타났었다.
나루세 준이치가 이식받은 뇌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그가 일하던 직장 사람들도 하나같이 말한 그의 평온한 성격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는 그. 여자 친구조차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뇌이식 수술팀은 그에게 다방면으로 검사를 하게 된다. 그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과격한 행동을 하게 되는 준이치에게서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다른 사람의 뇌를 이식했을 때 그 사람은 나루세 준이치일까, 아니면 뇌를 공여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일까. 그림을 그리기 좋아했던 준이치가 원하던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음악에 깊은 관심을 표하게 되는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라면 전혀 하지 못했을 행동들까지. 준이치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그를 주시하게 된다. 뇌는 특별한 것일까. 그를 변하게 만들 정도로 장기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
그에게 뇌수술을 하게 했던 사람들을 보면, 김호연의 『파우스트』를 떠올리게도 한다.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행해진 수술의 효과를 강하게 기대하는 자들. 소설 속에서만 나타나는 거라고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먼 훗날 가진 자들에게 원하는 것을 제공해 줄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 머잖아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게 씁쓸할 뿐이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이라 충분히 예상가능한 스토리다. 추리소설 좀 읽는다는 사람은 어느 정도 예상했을 터다. 어떤 내용이 진행될 거라는 걸 예상했으면서도 또한 한번 읽었던 소설임에도 책을 놓을 수 없었던 건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작가의 필력 때문이리라. 많은 작품을 낸 작가로 유명하기에 그럴테지만 아마 내가 가장 많은 추리소설을 읽었던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본성과 뇌라는 장기가 가진 힘, 변화하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했던 인간의 행동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책 속에서 던지는 물음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가. 인간으로서 제대로 된 삶을 산다는 건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질문을 던져 주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