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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평점 :
글을 쓸 때 자기의 기억과 경험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 소설을 읽으며 가끔씩 놀라곤 하는데, 작가들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소설로 혹은 에세이로 나타낸다는 것이다. 감추고 싶은 걸 드러내고 싶지 않아도 결국 드러내고 마는 게 글쓰기인가 싶다. 작가들이 소설을 쓸 때 완전히 다른 사람을 창조하는 작업을 거칠 것이다. 성격의 유형, 주인공이 경험한 사실들을 적어 그 사람이 되어 내용을 이끌어 갈텐데, 이 또한 주변에서 만났던 사람들, 혹은 책 속에서 보았던 인물들 중에서 어느 누군가를 상상하며 쓰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는 건 기억속 상처와 감정을 마주해야 하는 거다. 그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의 문장으로 탄생되며 비로소 그 시간과도 '안녕' 할 수 있지 않을까.
주로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일들과 감정들을 담은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한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읽었다. 이 작품 역시 자전적 이야기다. 작가의 열두 살 때의 기억, 즉 1952년의 6월의 어느 일요일로 돌아간다.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길래 작가는 40년 전의 기억과 마주하기로 했을까. 아주 친한 사람들한테만 말해왔던 것을 이제 하나의 책으로 나타내기로 했을까.
말다툼 끝에 어머니를 끌고 지하실로 가 낫을 들고 죽이겠다고 했던 아버지. 살려달라는 소리를 했던 어머니. 그 장면을 보았을 작가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숨어 있어도 부모가 말다툼하는 소리는 귀에 속속 들어오기 마련이다. 충격적인 상황은 오래도록 작가의 기억속에 각인되었다.
작가가 속한 Y의 아이들은 공립학교에 다닌 반면 작가는 중산층이 다니는 사립학교에 다녔다. 사립학교의 생활들을 말하는 데 별다를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어느 날 밤늦게 학교 아이들과 함께 교사가 집에 데려다 주었을때 속옷을 입고 나온 어머니에 대한 부끄러움. 열두 살이 아이가 느꼈을 부끄러움이 내게까지 전해지는 듯 했다. 그때 작가는 다른 친구들이 더 많은 걸 보게 될까봐 얼른 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와버렸다고 했었다.
스스로 사립학교의 품위와 완벽함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그것조차 부끄러움이라고 표현했으니, 작가가 느꼈을 부끄러움의 시기가 1952년 6월 최고조에 이르렀던 것 같다.
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 (117페이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 부모의 직업, 궁핍한 그들의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137페이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의 감정으로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모든 걸 드러내서 좋지 않는 점도 분명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가둬두었던 그날의 기억들을 꺼내며 자신이 느꼈던 부끄러움이라는 감정과 마주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금기처럼 여겼던 사실도 글쓰기라는 것 때문에 비로소 털어놀 수 있다는 것 또한 글쓰기의 이점이 아닐까 싶다.
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 (117페이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 부모의 직업, 궁핍한 그들의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13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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