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임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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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망구엘은 독서는 여행자와 같다고 표현했다. 직접 가보지 않아도 책 속에서 우리는 많은 간접 경험을 하게 된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들에 이입되어 주인공들의 세상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다. 생소했던 나라나 도시가 친근하게 다가오고, 그들이 숨쉬고 살았던 장소를 찾아 떠나기도 한다.

 

소설을 읽는 일은 어쩌면 작가의 생각에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일이다. 작가의 숨결에 속해 그가 이끄는대로 따라가는게 소설 읽는 일이다. 대부분 단편을 읽을 때는 하나의 작품을 천천히 읽는게 옳다. 하지만 다음 작품이 궁금해 이어서 읽다보면 소설 속 여러 인물들이 하나의 장편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임재희 작가의 아홉 편의 단편들이 그랬다. 단편들 속의 인물들이 마치 장편소설 속 인물들처럼 다가왔다. 외국에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 한국에서 타향에 살고 있는 동생 가족을 만나러 떠난 사람, 남편과 이혼후 새로운 언어를 쓰는 곳에서 조화를 만드는 사람. 감전 사고를 당한 남편이 떠난 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여성. 이러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살아 숨쉬었다.

 

 

소설의 제목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정들었던 곳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곳이 어디든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는 건 두려움을 동반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새로운 것을 찾아 과감하게 떠난다. 비록 두렵고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알수 없어도 말이다.

 

우리가 고향을 떠나 타국으로 향해도 마찬가지다.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동생 부부를 만나러 엄마와 함께 일년에 한번씩 가는 그곳의 헌책방에서 한국 사람이 분명한 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것 자체가 위안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 외국의 헌책방에서 한국 책과 판소리가 들어있는 LP판을 집어들고 눈물이 나올것처럼 감동을 받았던 일 또한 고향의 것을 발견했기 때문인가.

 

어린 나이에 미국에 입양된 압시드. 그의 영어 이름은 친아버지가 붙여준 이름이다. 스펠링 ABCD로 된. 자기가 아는 모든 영어 단어를 이용해 이름을 지어주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이 참 뭉클했다. 아무리 이해못한다고 하지만 이처럼 이해되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머나먼 이국 땅에 자식을 보내면서 그곳에서 불릴 이름을 만들어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표제작을 읽는데 이 소설집이 가진 주제를 담고 있지 않았나 싶다. 노동절 연휴기간때 찾아온 한국이라는 나라. 어머니가 한국인이지만 자신에게는 그저 다른 나라였다. 잠시 머물다 간 곳이라는 사실 뿐. 스탠바이 티켓을 구매한터라 바로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호텔에서 하루 혹은 이틀을 머물러야 했다. 작은 행동 하나에 한국 혹은 한국인에 대한 친근함을 느꼈다는 감정이 중요할 것이다. 거부하고자 했으나 거부할 수 없는 그 무엇. 자신이 태어난 혹은 자라온 나라에 대한 감정이 아닐까.

 

투박하지만 느리고 친근한 남자의 목소리가 오래된 것들을 환기시키며 의식을 붙들었다. 좋은 기억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들이었다. 밤인데 밖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이 도시의 어둠은 희미한 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또 다른 하루였다. (219~220페이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중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결국 어딘가에 속한 삶. 이게 우리가 원하는 삶이 아니던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은 것도,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찾는 일도 어딘가에 속하지 못했기에 떠나온 여정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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