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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초록 - 어쩌면 나의 40대에 대한 이야기
노석미 지음 / 난다 / 2019년 11월
평점 :
366쪽에 이르는 긴 이야기를 아껴 가며 읽었다. 문장마다 흙냄새가 났다. 한 편의 글이 마무리될 때마다 자연스레 계절이 흘렀다. ‘땅 구하기’로 시작해 ‘익숙한 길’로 끝나는 이야기의 곳곳에 초록이 있었다.
글을 지은 노석미 작가는 경기도 양평에 집을 짓고 고양이 씽싱이를 키우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살고 있는 40대 여성이다. 주민들의 추억이 깃든 산에 새집이 들어온 것을, 여자 혼자 사는 것을, 또렷한 직업 없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웃들과 함께. 그 안에서 자주 불편함을 느끼지만 혼자가 아닌 ‘함께’를 택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백한 글과 맑은 그림으로 묶여 묵직한 책이 되었다. 산문집이면서 동시에 작품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많은 작품이 실려 있어, 읽는 재미뿐 아니라 보는 재미도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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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하면 떠오르는 풍경과는 달리 작가의 삶은 분주하다. 기르고 만나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간다. 정원과 밭을 가꾸고, 동물과 사람을 만나는 일만으로도 300쪽이 넘는 이야기보따리가 채워질 만큼. 바쁜 중에도 매일 그리고 쓰는 일을 놓지 않고, 나를 찾아온 존재들을 소중히 기르고, 효율보다는 기쁨을 택하며 자기 몫의 생활을 성실히 꾸려나가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건강한 에너지가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책에 실린 작품 중 <베리 그린 시리즈>(사진 1)와 <눈이 온 뒤 시리즈>(사진 2)가 참 좋았다. 글을 통해 친숙해진 양평집의 풍경을, 작가님이 매일 보는 산의 변화를 함께 보는듯한 생생함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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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쪽) “내가 주로 하는 드라이브라는 건 그 산들 사이로 난 작은 지방 도로를 천천히 달리는 것이다. 산과 논, 밭, 작은 개울, 조금 큰 강, 그리고 드문드문 집들이 놓여 있다. 어딜 가나 이것들의 순열 조합이다. 하지만 어디를 가나 다르다. 계절마다 다르다. 날씨마다 다르고, 내 마음 따라 다르다. 그러니 질릴 수가 없는 풍경이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혹은 그 옆에 가만히 서 있기도 한다. 이곳에서 산을 많이 그리게 되었다. 언제나 산을 그리고 싶었는데 어느 날 산을 그리고 있는 나를 깨닫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이나 다 유니크하고 아름답다. 특히 여름의 산길을 드라이브하다보면 거대한 초록색이 뚝뚝 내게로 떨어지는 것만 같다. 매우 초록. 그 쾌감은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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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가온다. 거대한 초록색이 내게로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은 여름의 산길을 신나게 걷고 싶다. 올여름에는 부디 조금 더 자유롭게 집을 나설 수 있기를. 아, 느끼고 싶다. 매우 초록의 그 엄청난 쾌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