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임 - 오은 산문집
오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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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가 모국어라서, 이 즐거운 말놀이에 나도 모르게 푹 빠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참 좋다고 느꼈다. 산문집 <다독임>을 읽는 내내.


‘교교하다’라는 말을 발견하고서 벅찬 마음으로 노트에 적던 때가 있었다. 입시 준비로 바빠야 할 시절, 나는 ‘나만의 사전’ 따위를 만들며 즐거워하던 고등학생이었다. ‘교교하다’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 적고 그 아래 ‘교교한 달빛’을 예로 적었다. 소설을 읽다 건진 표현이었다. 교교하다, 교교하다, 교--교--. 처음 본 낱말을 천천히 발음해보며 그 소리와 의미를 익히는 순간이 좋았다. 그 말을 언젠가 꼭 써먹어야겠다고 다짐하는 내가 좋았다. 


그 후로 20여 년이 흘러 이 책 <다독임>을 만났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저자가 쓴 79편의 글은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일상의 언어로 가득 차 있었다. 별생각 없이 쓰고 그냥 흘려들을 법한, 평소의 말들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말들에서 빛이 났다. 평소와 달라 보였다. 이미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낯설어졌다. 그래서 같은 말을 읽고 또 읽으며 소리와 의미를 다시 익혔다. 소리는 같지만 의미가 다른 말들을 잘 구별해서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모국어의 미묘(微妙)함을, 그 덕에 얻는 재미를 실컷 누리고 싶어졌다.


내가 읽은 <다독임>은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이자 좋은 놀이책, 귀고픈 사람의 살뜰한 일기다. 짤막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고운 순우리말을 새로이 알게 되고, 뜻이 헷갈렸던 말들이 시나브로 또렷해진다. 평소의 말들만 있어도, 지나가는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듣기만 해도, 얼마나 재미있는 놀이를 할 수 있는지, 그 재미가 우리의 하루하루를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생생히 전달된다. “실컷 듣고 싶은” 귀고픈 사람이, 차곡차곡 모아놓은 일상의 언어들이 너무나 일상적인 그 덕분에 친밀하게 우리를 다독인다. 


‘아이쿠’라는 감탄사를 자주 쓰는 시인에게 나는 ‘아이쿠 요정’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앞에 붙일 또 하나의 꾸밈말을 찾았다. 책 속에 무려 다섯 번이나 나오는 이 말을, 나는 볼 때마다 웃었다. 무릎을 '탁' 치며 '아이쿠'를 내뱉는 감탄의 순간들이, 그런 순간마다 해사하게 웃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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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ᆞ재기 넘치는 사연을 접하고는 무릎을 탁 치기도 했다. (30쪽)

ᆞ미처 깨닫지 못했던 물건들을 발견하고 무릎을 탁 치기도 했다. (50쪽)

ᆞ산책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90쪽)

ᆞ신조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재미있어서 낄낄거리고 재치 있어서 무릎을 탁 치게 되지만. (150쪽)

ᆞ불현듯의 어원이 ‘불 켠 듯’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릎을 탁 쳤다.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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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무릎을 탁 치는 아이쿠 요정’이라고 불러드려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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