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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평점 :
책장을 덮으며 기어이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개운한 눈물이었다. 눈물이 나간 자리에 봄의 기운 같은 것이, 움트는 생명력 같은 것이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시기에 덩달아 움츠러든 어깨를, 쪼그라든 마음을 쫙 펴고 싶게 하는 소란騷亂이었다. 이 책과의 만남은.
읽은 것이 아니라 내내 겪은듯한 독서였다. 흰 종이 위에 차분히 놓여 있던 글자들이 읽는 즉시 생생하게 살아났다. 죽은 듯 누워 있던 생선이 톡 건드리면 팔딱 튀어 오르듯, 읽으며 만난 모든 이야기가, 그 속의 사물들이, 223쪽 내내 살아 움직였다. 자꾸 말을 걸고 얼굴을 들이밀고 손을 잡아끌었다. 좋았던 문장을 인용하는 일이 무색하게 모든 문장이 좋았다. 자주 책장을 덮었고, 사랑하는 이를 안듯 책을 끌어안았다.
가장 좋았던 것은 낯선 비유들. 공상의 전문가가 한참을 들여다본 단어와 풍경들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후두둑 쏟아졌다. 손우물에 그것들을 담아 읽고 또 읽다 보면, 경험한 적 없는 세계를 감각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솔직함. 수치스러움을 모르는 작가의 솔직함 앞에서 자주 시원했다. 나 역시 그렇게 시원하게, 수치스러움을 모르고, 일곱 살처럼 쓰고 싶었다는 것을, ‘부재’한 줄 알았던 욕구의 ‘존재’를 이 책을 다 읽어갈 때쯤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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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책’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 오늘,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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