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일곱 살 때 안 힘들었어요?
정용준 지음, 고지연 그림 / 난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상한 일곱 살 아이를 만났다. 이름은 나나("나요, 나!" 하고 떼쓰는 듯한 이름이잖아).
_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으니 항상 늦잠을 자고, 바닥에 물을 자꾸 쏟고, 할 일이 너무 많다는 말을 달고 사는 데다, 비 오는 날엔 달리기를 하겠단다. 어서 자라고 하면 “아빠도 안 자잖아요”라고 하고, “아빠는 할 일이 많잖아”라고 하면 “나도 할 일 많아요. 너무너무 바빠요. 아빠는 말해도 몰라. 내가 해결해야 해”라고 받아친다. 일곱 살 꼬마가 대체 뭐가 바쁘다는 건지.

그런데 이 꼬마, 조금 재미있다. “그런 게 있어요”라면서 신기한 말을 툭툭 던진다. 예를 들면 이런 거.
_
📍“난 나쁜 기억을 바다에 던지지 못하겠어요. ... 나쁜 기억을 갖고 있으면 힘들어요. 답답하고 가슴이 콕콕 아프고 눈물도 나고... 그런데요, 그 기억은 좋은 기억도 함께 섞여 있어요. 그래서 힘들다가도 행복하고 눈물이 나다가도 웃음이 나와요. 난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_
어? 일곱 살 아이가 저런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고? 나쁜 기억을 바다에 던진다는 건 또 무슨 의미지? 철든 어른처럼 말한다싶더니. 저 녀석, 또 바닥에 물 쏟았네. 정말 귀찮다. 너란 아이.

소설가 정용준이 쓴 동화 <아빠는 일곱 살 때 안 힘들었어요?> 속 ‘나나’의 첫 인상은 딱 ‘미운 일곱 살’이었다. 착한데 말은 참 안 듣고, 자꾸만 사고를 치고, 밤마다 우는 동생 라라 때문에 늘 ‘피곤한 엄마’와 주문이 밀려 잠도 못 자고 일하는 ‘바쁜 아빠’에게 놀아달라며 자주 떼를 쓰니까. 그런데 이 미운 일곱 살이 나를 자꾸 데려갔다. 27살의 나, 17살의 나, 7살의 나로. 그러면서 던져버린 줄도 몰랐던 나쁜 기억들을 찬찬히 건져냈다. 꺼내고 보니 나나 말이 맞았다. 거기엔 정말, 좋은 기억도 함께 섞여 있었으니까.

조심성이 없어서 물을 쏟는 게 아니었다. 그건 ‘나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비밀열쇠, 물방울 비행기였다. “하트 모양 잎사귀를 가득 달고 있는 나무들과 솜사탕을 닮은 보라색 구름, 시원하게 쏟아지는 콜라 폭포와 부글부글 거품이 이는 강, 크고 작은 사탕 바위들과 뾰족뾰족한 밤송이처럼 그린 것 같은 노란 별들, 하얀 설탕이 깔린 사막과 젤리로 채워진 호수”가 나나의 나라였다. 나나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꿈속의 세상. 그 낯선 풍경을 보며 일곱 살 때 나의 나라,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상상했다. 분명 지나왔지만 생경한 그 시절, 내 전부였던 것들을.

일곱 살 나나의 나라에선 토끼도 스컹크도, 사슴도 기린도 모두 달리기 선수들이었다. 1등한 나나도, 간발의 차로 2등이 된 얼룩말도, 더 늦게 들어온 동물들도 모두 즐거운 나라. 다치지 않고 무사히 달리기를 마친 것이 커다란 기쁨인 나라. “좋아해!”를 다섯 번 더하면 ‘사랑해’의 뜻이 되고, 아빠가 나를 사랑하고 나도 아빠를 사랑하면 그게 바로 ‘아름다운’ 것인 세상이었다.
_
‘미운 일곱 살’ 나나를 만나는 동안, 나는 이미 알고 있던 말들이, 너무 쉬워 뜻을 찾을 필요도 없는 그 말들이 자꾸만 낯설어졌다. 이를 테면, 나쁘다 좋다 기쁘다 슬프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슬프다 같은. 뱃속에서 일하는 아저씨가 열심히 일하다 힘들어 쉬는 한숨이 ‘방귀’라는 아빠의 말에 “그 아저씨는 정말 이상한 아저씨예요. 에휴-라고 해야지. 뽀옹이라고 한숨 쉬잖아요. 그리고 아저씨에게 칫솔 드려야겠어요. 입냄새 지독해”라고 말하며 배에 치카치카 양치질하는 이 아이 덕분에, 방귀 하늘 바다 파도 밤 별 낮 해 같은 말들을 어떻게 잘 소개할 수 있을까 신나게 고민했다.

생각할수록 정말 이상한 일곱 살 아이를 만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