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마치 1 - 진옥섭의 예인명인
진옥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임방울 명창의 쑥대머리를 틀어 놓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책은 언제나 내게 머리를 숙이게 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배꼽 인사를 하게 만드는 책들이 있다. 이 책 <노름마치>(생각의 나무. 2007)는 아마도 오래도록, 고개를 절로 짓숙이게 되는 첫 번째 책으로 내 안에 자리할 것이다. 눈 앞에서 한판 놀고 나니 다른 이야기가 무색하여 그대로 판이 맺어진 듯 하다. 제목 그대로 이 책 또한 노름마치.

 

한 문장 한 문장 아로새기다

 

첫 장을 대면하면서부터 쥐고 있던 연필이 바삐 움직였다. 그러다 채 다섯 쪽을 넘기지 못하고 연필을 내려 놓았다. 마음과 손을 움직이는 문장들이 너무 많아 밑줄 긋기를 포기했다. 한 문장 한 문장에 담긴 세월과 의미를 마음 속에 아로새기고 싶어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읽는 시간이 다른 책의 두 배는 더 걸렸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감탄사를 마구 내뱉다가, 히죽히죽 웃었다. 책 두 권이 무색할 만큼 저마다 길고도 깊은 사연들을 풀어놓아 주셨다. 켜켜이 인고의 세월 쌓인 이야기들을 가만히 앉아 듣는 것이 송구스러울 만큼, 고스란히 보존된 옛날이 여기 있다. 읽는 내내 감사했다. 묻혀 살다 언젠가는 잊혀져 버릴 그 분들을 우리가 만날 수 있도록 저자 진옥섭이 들였을 수만 번의 발품에, 꽁꽁 싸매두었던 지난한 세월을 세상에 내보이기 위해 흘렸을 노름마치들의 눈물에 그저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되돌려 드릴 말이 없음이 안타깝다.

 

샘이 나고 애가 탄다

 

그 분들의 삶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하지만 오랜 세월 그 분들을 사모하고 함께 해온 전통예술 연출가 진옥섭이기에, 그 분들의 춤과 노래를 독자들의 눈 앞에 펼쳐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재미나고 멋스러운 문장들과 한자를 통한 말놀음에, 읽는 내내 참 즐거웠다. 하지만 저자는 직접 본 것을 듣기만 하는 처지이기에 자꾸 샘이 나고 보고픔에 안달이 났다. 다음 번 공연에도 그 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무대에 서 주시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수 밖에.

 

기특한 내 두 다리

 

이 책을 통해 만난 분들의 춤사위를 직접 보지도, 노랫자락을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그 분들의 존재나마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 한 사람의 독자로서 내가 할 일은 앞으로 있을,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열리고 있는 공연에 열심히 참여하는 관객이 되는 것이다. 공연을 기획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저자가 남긴 에필로그를 보며 그 동안 연극, 뮤지컬, 무용 공연 등을 보기 위해 바삐 움직였던 내 다리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노장들의 신명 나는 연주가 있는 문글로우

 

홍대 근처의 재즈 바 문글로우(Moon Glow)에서는 매주 목요일 9, 재즈 1세대들의 연주가 펼쳐진다. 처음 그 곳을 찾았을 때의 마음의 울림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연세 지긋하신 백발의 노인들이 드럼과 피아노, 색소폰과 클라리넷을 연주한다. 얼굴 한 가득 함박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절묘하게 어울리는 즉흥 연주에 그 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의 어깨가 들썩인다. 어떤 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제 나름의 신명 나는 춤판을 벌인다. 이런 게 신명이구나 싶었다. 저 연세에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 저렇게 신나는 표정으로, 건강하게 몸을 쓸 수 있구나 싶었다.

 

기립박수를 이끌어낸 정통연극 시련

 

이 책에 소개된 노름마치들의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공연 전무후무(全舞珝舞)가 열렸던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우연찮게 얼마 전 그 곳에서 시련이라는 연극을 보았었다. 아서밀러의 작품을 명성황후의 연출가 호진이 만들어낸 정통연극이다. 그 연극에서도 감초 역할로 관객들의 웃음을 끌어낸 사람들은 모두 노년의 배우들이었다. 관객들의 관심에서 잊혀진 줄만 알았던 정통연극은 그 날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제 관객들은 정통을 알아본다.

 

목마른 관객, 읽고 또 읽는 독자로 마음을 달래다

 

정통의 맛과 멋을 알아보는 관객들이 있는 이 시대에 그 시대의 노름마치들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대를 잘못 탄 노름마치들. 그런 시대였기에 혼을 다한 춤사위와 노래가 나올 수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보고픔에 목마른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심정, 어찌할 수가 없다.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이기에 반짝반짝 빛이 난다. 굵은 눈물 방울 후드득 떨어졌을 아득한 길이기에 차마 다시 가시라는 부탁조차 할 수가 없다. 그저 이 책 두 권 곁에 두고 읽고 또 읽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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