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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반걸음만 앞서가라
이강우 지음 / 살림 / 2007년 2월
평점 :
광고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광고 보기를, 15초 광고가 주는 재미와 감동, 여운을 즐긴다. 광고일, 광고장이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광고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스타를 앞세운 이미지와 스타일 위주의 광고, 재미만 있을 뿐 감동을 빠져 있는 광고들을 보며 가끔은 짜증이 나기도 한다. 잘 만든 광고는 영화보다 감동적이다. 작년 9월,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렸던 ‘2006 칸 국제 광고제 수상작 페스티벌’. 그때 본 세계의 광고들은 재치와 아름다움, 그리고 감동을 담고 있었다.
@ 광고계의 전설, 이강우
제목과 표지를 보았을 때는 그저 그런 또 한 권의 자기계발서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 ‘이강우’를 보고 자신 있게 이 책을 펼쳤다. 저자 이강우를 말할 때 대한민국광고대상 대상 수상경력이 꼭 따라다닌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 한 줄의 카피로 그를 좀더 쉽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 드려야겠어요”. 경동보일러 ‘효심’편에 나왔던 며느리의 이 한 마디는 방을 덥히는 보일러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그 광고처럼 정감 있고 소박한 그의 글이 이 책에 담겨 있었다. 모든 것이 광고인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 말,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
15초의 광고와 한 줄의 카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 그래서인지 그의 글에는 유독 ‘말’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말을 결코 내뱉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요즘 행복하세요?”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진하지 않은, 따끈한 녹차 한 잔을 나누며 그와 함께 말과 사람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 느낌이다. 그와 나의 지난 삶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 선배의 후회들을 통해 후배인 나는 값진 교훈을 얻는다. 앞날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꿈꾸고 만들어 가는 것. 60대의 그도 20대의 나도, 꿈이 있어 오늘이 즐겁다.
@ 훈훈하고 정감 있는 그림과 글
책 속에는 직접 그린 그의 그림들이 걸려 있다. 이집트, 앙코르와트, 터키, 체코 등 여행할 때 그린 스케치에 따듯한 색이 입혀져 있다. 새로운 이야기마다 작은 꽃그림을 그려 넣어 시작을 알리고, 장이 바뀔 때는 봄볕을 닮은 노란색 바탕에 그린 그림이 독자들을 환하게 맞아 준다. 그의 마음처럼 글도, 그림도 훈훈하고 정감이 있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 만든 광고였구나’ 하는 생각에 그가 만든 광고들을 다시 보게 된다. 시작도, 중간도, 끝맺음도 모두 ‘경쟁’인 광고의 세계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 하지만 그 속에서도 진짜 내 사람을 만들고, 좋은 말과 마음을 나누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사람을 이 책을 통해 만났다.
보통은 앞에 쓰이기 마련인 지인들의 추천사가 가장 나중에 있어 좋았다. 가끔 추천사로 인해 저자에 대한 환상 혹은 편견을 갖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내가 먼저 만나보고 그에 대해 조금 알고 난 후에 그를 아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에 실린 카피라이터 이만재의 글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나 역시 그를 만나고 난 후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자기의 역할을 부여한 이후 자신에게 한 그 약속을 어느 단 한 순간도 소홀히 한 적이 없는 전설의 사람이 이강우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이만재의 글처럼, 내가 만난 이강우도 사람과 삶, 마음과 말 어느 하나 소홀하지 않았던, 상대를 배려하며 딱 반걸음씩만 앞서 살아온 훈훈한 ‘사람’이었다.
[공감]
“말이란 이상한 것이어서 처음에는 듣기에 거북하고 잘못 쓰였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느 정도 귀에 익숙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별로 저항감이 없이 들려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잘못 쓰인 언어가 귀에만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생각마저도 그런 쪽으로 바뀌게 된다는 사실이다” (59-60쪽)
“그런 점에서 나는 요란하게 제도를 바꾸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말 한마디를 바꾸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