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 - 민주화 20년 민주주의는 누구의 이름인가 당비의생각 1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 산책자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이후'를 말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레닌의 유명한 발언이 다시금 등장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 하지만, 문제는 전환되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무엇이 이 상황을 만들었고, 무엇이 어떻게 이 상황을 이끌어가고 있으면, 무엇으로 이 상황은 진행될 것인가? 사실, 우리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매스미디어에서 쏟아져나오는 기사를 넘어선 사회과학자들의 담론은 여전히 '서론'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최장집의 '정당정치'와 '대중정당론' 테제에 맞서는 좌파들은 소소하다. 그렇다고 뭔가 그 말에 따르는 것은 아니고, '이건 아닌데?' 수준에서 멈춰있는 듯해 보였다. 물론 '직접민주주의론'의 근거를 통해서 버티고 있는 듯하다. 혹은 '아직은 촛불을 끌 때가 아닙니다?' 뭐 이 정도 수준의 담론이라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사회적 현상이 있을 때, 발로 뛰는 매스미디어의 기자들과 PD 그리고 시민들과 그 반대편에 있는 정부야 지금의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까, 이 현상을 어떻게 묘사할 까 수준에서 멈출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과학자들은 지금 표층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들, 푸코식의 '담론의 세계'의 역동성에 대한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하고, 이 것들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전망 혹은 계획들을 위한 예비 작업들을 진행하여야 한다. 그 것은 본인의 입장과 상관없는 지식인의 책무가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숲과 나무를 함께 보아야 하는 과정일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본인의 아이디어가 필요할 테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절실한 순간이 되어버렸다. '~이후'를 말하기 위해서는 이제 그래야 할 때가 되었다. 이제는 사르트르와 다른 한편의 후기구조주의자들의 68년처럼 인문사회과학의 통찰력과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물론 대중의 상상력은 중요하다).

 

당대비평에 대한 기억, 그리고 당비의 기획

사실 난 당대비평(이하 '당비')이 폐간할 때까지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그건 오직 한 가지 이유였는데, 강준만이 당비를 '현실과 유리된 지식인의 성'에 비유했었기 때문이다. 아니 아마 '그놈의 순결한 태도를 버려라!' 정도의 주장을 강준만은 <인물과 사상>을 통해서 말하곤 했고, 어렸을 때의 각인은 <진보평론>이나 <이론>지, <문화과학> 같은 무크지는 과월호도 찾아 읽으면서도 이상하게 <당비>는 손도 대지 않게 만들었었다.

다시금 당비를 생각한 것은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 덕택이었는데, 창비에서 나왔던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에 나왔던 담론들이 맘에 안들었을 때,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에 나오는 이야기는 속속 귀에 들어왔다.

사실 한 2년 전만 해도 난 모순 덩어리임에 틀림없었는데. 이를테면, 난 나를 신좌파라고 생각했었지만 여성주의를 중산층 이상 여성들의 '재수없음'과 함께 생각했었고, 생태주의에 찬성하는 제스추어를 취하면서도 그들의 운동과 '쁘띠 부르주아' 취향을 함께 떠올리면서 한 발짝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근육성의 노동운동과 강경한 힘의 정치 지향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것들은 이미 수차례 이야기 했었지만, 우석훈의 책들을 통해서 부숴버리고 당비가 폐간한 이후 단행본으로 냈던 기획들을 통해서 다시 섬세하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물론 여전히 그런 상상력들의 디자인들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이번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는 조망의 기획이 되겠다.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공저자들인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기획은 덕택에 다채로움으로 펼쳐질 수 있었다. 물론 항상 그 놈의 다채로움과 '무르익지' 않음에 대한 위로 혹은 희망섞인 태도들의 난사가 좌파들의 성숙을 방해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말이다.

   
 

먼저 그것은 이른바 민주화 체제가 마감되고 난 지금 그 민주화 체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민주화란 이름으로 진행되었던 정치적 변형의 과정은 민주주의에 관한 특정한 정치적 상상력에 바탕하고 있었고, 또 이를 강요하였다. 그것이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형식적 민주주의의 완성이자 정치적 근대성의 완성이라 부르는 것이었든 아니면 급진적 사회운동 세력이 말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위한 정치적 기획을 은폐하는 허울에 불과한 것이었든, 그것은 정치에 관한 우리의 상상력에 커다란 효과를 발휘했다. 그리고 이를 묻지 않은 채 민주화 이후의 정치를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중략)

이 책의 후반부를 구성하는 글들이 다루려는 바를 굳이 요약하자면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를 사고하기 위해 우리가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쟁점들을 검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쟁점들을 다룸으로써 여기에 실린 글들은 민주주의에 관한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하고 변형하고자 한다. 이젠 시쳇말이 되다시피 한, 그러나 여전히 귀담아들어야 할 "민주주의의 재민주화"란 말처럼 민주주의는 새로운 정치적 실천을 위해 경유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직접적으로 상대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라는 순수하게 증류된 대상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적 행위와 함께 존재하고 기존의 정치적 제도를 통해 현상하며 또한 사회적 삶의 세계를 상상하는 공간을 통해 작용하기 때문이다(pp.8~9)

 
   

확실히 최근의 최장집과 일군의 제자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재민주화>라는 것과 물려 있다. 의식을 하기는 했나보다.

저자들 각자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한국사회의 현재의 민주주의와 민주화라는 것에 대해서 탐색한다. 이는 최장집의 '민주주의의 제도화'라는 관점에서의 민주화라는 정치학적 개념의 탐색을 넘어선 다층적 차원의 것이다.

김원, 김진호, 서동진, 이상길, 이성민, 이영준, 이택광, 임옥희, 조주현, 최예륜, 한보희, 홍기빈, 홍세화.

책을 읽으면서 사실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진 사람은 홍세화였다. 가장 완고한 주장을 피리라 생각했고 역시 그러했다. '사회귀족'으로 한국사회를 읽으려는 관점. <쎄느강은 빠리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고2때 읽었을 때의 느낌이나 지금의 홍세화를 읽는 느낌이나 주사파에 대한 그의 관점을 빼면 달라진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여전히 그로 하여금 그런 주장들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 한국사회가 아직 여전히 그 자리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장 맘에 들었던 글들은 사법권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동진의 글이었다. 사실 문학 전공자들의 지젝, 들뢰즈, 네그리에 대한 이야기들은 좀 내 철학적 기반이라는 것이 약해서 인지 혹은 내가 너무 정치적으로 현안 중심으로 사고하는 인간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들이었는데, 서동진의 글은 딱 내가 원하는 깊이와 넓이의 수준에서 말해주고 있었다. 근본을 건들되 표층부터 시작하는 이야기. 현실의 모자이크와 그것들을 통한 담론의 재구성이라고나 할까?

김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진보적 정치학'을 하는 사람이 겪는 문제. 특히 더더욱 미국편향(그나마 영미 편향도 아니다)으로 죽어가는 진보적 정치학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들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마지막인 김진호(http://blog.aladin.co.kr/hendrix/1852299)의 글은 짐짓 종말론적인 느낌까지 나는데, 굉장히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이고, 거의 불가능한 줄거리이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학살의 희생자들이 풍기는 악취를 가장 잘 희석하는 향수가 만들어지더라도 그것은 완벽히 숨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파울 첼란이 <쉬볼렛>에서 말한 것처럼,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회적 학살의 상황이 은폐된 과거의 학살조차 호출해내기 때문이다. 그 죽음의 냄새에 맞장구치지 않을 수 없는 이가 그 죽음의 냄새를 폭로할 것이기 때문이다. 완벽히 은폐되는 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틈새를 통해 사회적 학살은 기억의 통로로 비집고 나온다(p.247).

 
   

현실은 뭔가 꿈틀댈 수 있는 에너지를 불러냈고, 이제 거기에 상상력이 필요한 때가 되고 있다. 이런 기획들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들이 현실의 힘들과 마주쳐 뭔가 의미있는 흐름들을 추동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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