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촌놈들의 제국주의 -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ㅣ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3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평점 :
우석훈, 이 시대의 등대
우석훈의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를 시작으로 해서 그의 모든 저작을 읽어왔다. <직선들의 대한민국>만 사러가면 된다.
우석훈을 읽기전에 난 확실히 좌파는 맞았고 구좌파가 아닌 신좌파이긴 했지만, 어떤 생각들을 중심으로 내 생각을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해야 할 지에 대해서 아무런 감을 잡고 있지 못했다.그러한 점에서 볼 때, 우석훈은 나에게 항상 '좌파가 꿈을 꾸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구체화하여 정책으로 만드는 가'에 대한 모델을 제공하곤 했다.
이를테면 한국의 좌파에게 우석훈은 '좌파는 대안이 없다'라는 말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해결사이다(물론 그 정도의 대접을 한국의 좌파들이 해주고 있는가? 여전히 강고한 주사파와, 강고한 구좌파들은 그 만큼의 인정을 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사파는 불가능 할 것 같고, 구좌파들은 좀 더 깨지고 나면 그를 조금 더 쳐다는 볼 것 같다.).
그리고 좌파에 대한 이야기를 떠나서 시민들에게 우석훈은 이 시대를 비춰주는 등대역할을 하고 있다. 허우적 거리면서 세상에 대한 회의만 강하게 남아있던 대한민국에서 그 허우적 거림의 디테일을 파헤치되 다시금 사람들에게 희망을 어떻게 구성해야하는 가(이를테면, 지승호와의 인터뷰집의 제목처럼(http://blog.aladin.co.kr/hendrix/1934810))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다.
<촌놈들의 제국주의>, 우석훈의 생각의 연속선상
<88만원 세대>(http://blog.aladin.co.kr/hendrix/1515926),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에 이은 한국경제 대안 시리즈의 3번째 책은 <촌놈들의 제국주의>이다. 그가 그전의 블로그(지금은 없어졌지만 fryingpan.tistory.com)를 통해서 밝힌 계획에서 2권씩 병렬로 하여 2번, 4권의 책을 찍어내고 은퇴하겠다고 했었는데. 그 두번째 기획의 첫번째 권이 바로 이 책이다.
한권 한권 떼어내서 보아도 그 자체의 의미 전달이 강하게 오지만, 그의 저작 전반을 읽으면서 그 궤적을 살펴보는 것이 더 크게 그를 조망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더 큰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1. 이를 테면, <아픈 아이들의 세대>에서 건설자본이 과잉으로 형성되어있는 한국 경제의 현실을 제기한다. 이는 아이들의 아토피와 이어진 부정적 미래를 만들어 내고 있는 문제만을 제기하고, 그 지속 불가능한 생태적 한계를 이야기한다. 이 아이디어는 <촌놈들의 제국주의>에 와서 건설자본이 주도하는 한국경제의 종점이 어쩌면 '한중일' 전쟁이 될 수 있다는 공포스러운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 또,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를 통해서 오히려 미국의 51번 째주에 편입하는 것만도 못하는 결과를 도출하고 있는 한미FTA의 협상과정을 이야기했을 때, 이러한 이야기는 <촌놈들의 제국주의>에 이르러서 현재의 FTA의 구상이라는 것이 지배층의 프로파간다인 '동북아 공동체'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국주의적 프로젝트를 위한 구상의 일환일 수밖에 없다는, 즉 동북아의 조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끼리의 충돌이 만들어 냈던 세계대전 이전의 기류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자유무역'이 '평화'를 만들어 냈다는 경험적 자료가 없다는 점에 의해서 뒷받침 된다.
3. 마지막으로 <88만원세대>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를 가지고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세대간 위기라는 것이 강하게 20대들을 탈 정치화하고 그 것들이 20대를 가장 불행한 세대로, 그리고 만만한 세대로 만들어 내고 있다는 우석훈의 주장. 그 근저에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와 수출 중심의 경제전략이 강하게 깔려있다(그 마저도 다양한 전략이 아닌, 건설업 중심의 노가다 정신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대기업이라는 곳은 조직론적으로도 취약한 결론을 낼 수밖에 없는. 이를 테면 '절이 싫으면 중의 나가라' 식의 협박만 난무하고 실제로 내부경쟁을 제약할 능력조차 없는 취약한 의사결정구조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이는 대기업의 문제가 장하성 같은 이의 주주총회에서 보여주었던 '소액주주운동'과는 조금 또 다른 문제가 된다.
생태적 다안성을 지켜줄 수 없는 경제구조(대기업 중심의 공룡 경제)와 그나마 그 자체 행위자들의 경직성은, 결국 한국 경제의 상상력을 제약하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고 전쟁을 추동하는 경제로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북아 중심국가'의 환상은 밖으로 진출하지 못하면 살 수 없다는 기반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그것을 조정하지 않은 노무현 정부의 '강화된 신자유주의 시대'(이른바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로 설명이 되는 민족주의자들의 팽창적 제국주의)가 만들어 낸 괴물 아니었던가? 우리는 현 정부를 비판하지만, 어쩌면 현 정부야 말로 노무현 정부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새로운 희망 찾기
우석훈의 책들을 결론 장을 보지않고, 떼어서 보면 누구의 말마따나 '호러 경제학' 시리즈가 되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의 우울한 분석과 달리 대안들에 있어서는 뭐랄까, 이러한 표현이 적절할 지는 모르겠지만 '상큼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왜 굳이 '상큼'하다고 하냐면, 구좌파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야기들에 대한 결론이 언제나 '자본주의의 경향적'인 공황의 시기를 기다려서 투쟁을 토대로 그 체제를 전복하자는 식으로 나와서, 실제로 어떤 정책적 대안을 만들 거냐 했을 때에 'all or nothing' 식의 구도로 쉽게 빨려들어가는 반면, 우석훈의 이야기는 그래도 개 중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펼쳐준다는 점에서이다. 게다가 그 것들의 속성이라는 것이 항상 빽빽한 것이 아니라 '탄력적'인 것이고 그가 좋아하는 표현에 의하면 '뮤턴트'를 양산할 수 있는 다양성과 안정성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번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대안중 모델로 제시되었던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보라. 국가들간의 상호 이해를 위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서 양국의 지식인들을 재구성하고, 그를 토대로 사회의 평화인프라를 구축한다. 쉽게 생각해보자, 처음에야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가는 유학생 중에 '내가 이 쪽바리들에게 지식을 배워서 이들의 심장에 칼을 꽂으리'라고 생각하는 생각을 가진 이가 한 명이라도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20~30년 상시적인 프로그램으로 상호간 교류가 일어났을 경우, 우리는 일본과 바야흐로 '대화할 수' 있을 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일본도 그것이 가능할 것이고, 중국도 가능하겠지.
이 쯤에서 어찌 쪽발이들과 되놈들과 대화를 할 수 있겠냐는 '애국지사'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난 그들의 그런 "우국충정"이 얼마나 파괴적인 지에 대해서 굳이 부연할 필요를 못느끼고, 그건 기회가 된다면, 다시금 할 이야기가 되겠다. 간단하게 지금 내가 볼 때에 베트남이나 미얀마 등의 동남아 이주민들에게 한국인들이 새로운 '제국주의자'로 느껴지지는 않을까? 혹은 아프간 선교사를 본 아프간 민중이 그렇게 느끼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가 그들과의 상생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 '2만달러' 국가의 예의가 아닐까?
공존의 사고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쉽게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물질적 기반을 포함하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 중심에는 경제구조의 변환이 있다. 우석훈은 그렇다 하여 '경제구조의 변환'이라는 것이 물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 중심에는 그것을 바꾸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게 만드는 힘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다. 이를 테면, 10대가 끌고 나왔던 촛불 시위의 힘. '수능파업'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러한 시점에서 제대로 된 우파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된다. 대화가 되는 우파 말이다. 사회의 안정성이 깨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해야하는 것은 언제가 우파가 아니었던가? 지금의 대한민국의 우파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조악한 이론적 수준을 가지고 한국의 실물경제를 바라보고, 또한 묵시론 적인 대안만을 품고사는 한국의 좌파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더 많다는 생각이다. 왜 우석훈 하나여야 하는가? 영국의 Fabian Socialist Association 처럼 드글드글한 좌파 정책가를 양산하는 싱크탱크 하나 없는 대한민국의 자화상(물론 그들의 결론에 언제나 동의하는 건 아니다.). 가능하다면 공부를 마친후에는 좌파 사회과학자들이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다. 제2의 우석훈, 제3의 우석훈이 아닌. 양승훈이고, 우석훈이고, 그리고 또 아무개이고, 또 아무개인 각각의 공고한 생각들을 가지고 대안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파멸을 막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