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정치 풍속사 - 나의 문주 40년
남재희 지음 / 민음사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남재희, 풍류랑.

남재희가 권영길에게 썼던 편지(http://news.empas.com/show.tsp/cp_pr/20070921n08907/?kw=%B3%B2%C0%E7%C8%F1%20%3Cb%3E%26%3C%2Fb%3E)를 프레시안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예전에, 우석훈의 블로그(아마 이글루스 시절이었으리라 생각한다)에서 보수주의자 중에서 여전히 디테일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남재희리라는 평을 듣고 그의 이름을 기억했었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에 산 죄로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를 본 적이 없었기에 그의 글은 굉장히 파격적으로 느껴졌다. 어설픈 감성적 진보주의자의 한 권의 책보다 더 날카로운 한 편의 글이었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유신 이후 10대 의원부터 여권에서(당시의 여권이라면 민정당) 의원도 했고, 전두환에게 신임을 받기도 했으며,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도 했던 사람인, 관운이 있고, 이 쯤에서 우리가 추측해보건데 굉장히 꼴통에 TK 출신 정도, 아니면 KS 마크를 달고 있는 전형적인 범생이 스타일을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술 사랑, 그리고 그의 주위의 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버릴 수 있었고, 진짜 '풍류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들과 그들이 마셨던 술, 그리고 그들이 마셨던 장소에 대한 복원된 기억을 읽어보고, 또한 그 당시에 대한 내 생각들을 되짚어보면서 당대의 '야사 한국 현대사'를 구상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들의 '사실성'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삼아볼 수는 있겠지만, 의미상의 '진실'은 오히려 더 크게 와닿았었고, 당대의 지성사나 사상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한 그들의 생활에 대한 평전이나 자서전 류를 더 읽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이 책에 나오는 명사들의 이야기를 구구절절히 말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나왔던 종로와 남대문, 세종로와 이태원을 가로지르는 동네들의 맛집들, 멋집들, 그리고 괜찮은 술집들은 한번씩 꼭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난 굉장히 '강남문화'에 대해서 거북함을 느끼는 사람인데, 그렇다고 '강남/강북'의 구도로 날을 세우고 싶은 건 아니고, 오히려 '종로/신촌/남대문'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근대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장소들의 역사와 현재성이 얽혀있는 그 느낌 자체를 좋아한다. 남재희가 가는 곳들은 내가 사랑하는 '하동관 곰탕' 집을 비롯하여 그런 구미와 어울리는 곳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할아버지와 한 번쯤 호기를 부리면서 한 잔 하고, 그의 분위기대로, 그리고 한발짝 떨어진 곳에서 내 분위기대로 한잔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강남의 메트로폴리탄을 가장하고 댄디함을 입은 척 하는 이들이 벌이는 전형적이고 몰 개성적인 모습이 싫은 거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박학다식'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이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인물들에 대한 평 그 자체가 가능하기 위한 전제들이 남재희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사상 동향이나, 문화 동향, 그리고 그것들이 총 망라된 유흥가의 동향을 정확하게 꿰 뚫는 힘. 그것이 남재희가 가진 '박학다식함'의 출발 선상인 듯하다.

술 한잔과, 같이 마실 술 친구와, 그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 그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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