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신학의 미소 - 동시대인 총서 11
김진호 지음 / 삼인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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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꼬뮤날레 1회로 기억이 된다, 들뢰즈와 관련된 논의들을 가지고 예수를 읽어내는, 신학을 읽어내는 일군의 학자들이 토론을 시작했고, 마지막에 김진호라는 목사가 한마디 한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는 왜 아직도 목사의 직함을 달고 있는 걸까요?" 서로 너털거리는 웃음을 지으면서 끝났지만, 어쨌거나 잠시 정적.

그리고 나서, 그들이 주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라는 곳에서 민중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한동안 그 홈페이지를 기웃거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전에도 이야기했듯이(http://blog.aladin.co.kr/hendrix/1848274) 민중신학에 대해서 관심만 갖고 아무런 읽는 노력을 해보지 않았던 나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리도 만무했고(지금도 일천한 데 말이다.), 역시 열심히 게시물을 열람하지 않았다.

<반신학의 미소>를 산건, 2007년 8월 5일인데, 사게 된 것도 한동안 갖고 싶어했지만, 크게 우선순위가 가지 않았기 때문에 한참 망설이다가, 류상태의 <당신들의 예수>를 읽다보니 우선 순위가 앞으로 오게되었다(http://blog.aladin.co.kr/hendrix/1713606). 하지만 당시에 읽기에 너무 난해해서 덮고 있다가, 요즘에 벼른 김에 읽어버리자는 마음으로 한 번 주욱 읽었다.

이 책은 삼인의 '동시대인 총서'의 다른 책들 구성과 같이 논문들의 모음이고, 따라서 논문들의 주제도 다양하고, 한군데로 딱 모아진다고 말할 수 없다. 저자도 인정하는 바다. 다만 저자의 말처럼 '반신학의 구상'을 하는 차원에서 그나마 이야기의 선이 모아진다고 주장한다.

1,2 장의 내용은 사실 별로 와닿지 않았고, 분석적인 사회과학 논문식으로 쓰여진 3장 "교회의 위기와 반신학" 부분이 나에게 가장 쓸모가 있었다.

'민중신학'을 도대체 왜 하는가? 그에 대한 그의 대답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교회라는 제도적 실재를 반그리스도적인 것이라고 규범적인 비판을 가하는 것과,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현실태로서의 교회의 유의미성을 부정하지 않는 것 사이에 모순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원리적인 규범성과 그것의 현실적인 실행은 종종 상보적인 실천의 패러독스를 담고 있다(p.235).

 
   

그리고 그가 민족주의라는 것의 황폐함을 알고 있고, 젠더의 문제가 단순한 차이의 인정의 문제가 아니라 푸코식의 미시권력-훈육질서 와 관련되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 굉장히 놀라웠다. 실은 내가 바라보는 신학자에 대한 편견일 수 있겠다. 또한 민중의 구상에 있어서 '민족'처럼 '상상속의 공동체'가 아닌 그것을 다시금 어떻게 구성해 낼 것인가의 문제를 발견하고 있다는 점에서 7년이 지난 저작이지만 굉장히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의 구상에서 역동적인 '니체적' 활력이 느껴지는 것이었고, '생동' '생명' 그 자체의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또한 요즘 한참 읽었던 '예수 세미나'(역사적 예수 연구) 동향에 대한 논평도 굉장히 세련되고 그것의 '실천적 함의'에 대해서 짚어내는 부분들이 내 공부의 '지도의 필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줬다.

그의 <예수 르네상스>와 <예수 역사학>을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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